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육군 전방에서 군 복무한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말로서 강원도 ‘인제’와 ‘원통’에서 군대생활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이야기이다. 최전방 원통에서 아들은 육군 이등병 생활을 시작하였고, 1개월에 1회만 가능한 주말 외출을 위하여 면회를 가기로 하였다. 목요일 저녁식사 자리에서 과음한 탓인지 저녁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속이 쓰리고 복통이 서서히 왔다. 새벽이 가까워 올수록 복통은 심하여졌고 온몸은 추위로 바로 누워있을 수 없었다. 턱이 떨리고 이빨이 턱턱 부딪치기도 하였다. 난방 온도를 올리고 이부자리를 두껍게 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하였다. ‘아~~~ 이러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흔들어 깨워 병원응급실로 데려다 달라고 하였고, 결국 새벽에 응급실 환자가 되었다. 링거를 맞고 침대에서 누어있으니 조금은 회복이 되어 갔다. 죽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외래 진료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며칠간은 죽을 먹고 술은 절대 금지하라는 당부도 받았다. 그러나 다음날 불편한 몸과 뱃속의 울렁거림을 참고 원통으로 향하였다. 아내가 운전을 하면서도 걱정하는 눈치가 컸다. 원통의 여관에서도 식사는 죽으로 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아들의 부대 정문에 면회신청을 하였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면회 신청인이었다. 아내에게 당부하였다. ‘내가 배가 아프다거나,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거나 현재 죽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하였다. 아들이 반가움으로 뛰어 나왔다. 맥주잔을 부딪치며 아들과의 외출 첫 식사를 즐겼다. 아내에게는 나의 몸 상태에 대하여 절대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면서 식사의 즐거움을 같이 하였다. 백담사 가는 길에 고드름 축제장에 도착하였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몸을 얼게 하였다. 고드름이 산더미처럼 생긴 그곳의 논에 물을 가두어 썰매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세찬 눈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썰매를 빌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썰매 타기를 즐겼다. 서로의 썰매 부딪치기와 달리기 경쟁을 하면서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들은 한쪽 논바닥에서 삼겹살 구이를 하자고 하였다. 삼겹살을 구입하면 화로를 하나씩 빌려주고, 화로 주변에 앉아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것이다. 막걸리 두병 그리고 소주 한 병도 들고 왔다. ‘혹시 저것 먹고 다시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대강 구운 삼겹살과 막걸리 그리고 소주까지 잔뜩 마셨다. 아들이 귀대할 때까지만 무사하게 하여달라고 주문(呪文)을 외웠다. 그리고 귀대시간이 다가왔다. 부대 정문이 멀리 보이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함박눈이 온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식당을 나섰을 때 우리의 승용차는 눈 속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다. 부대 정문에 간신히 도착하여 우리는 깊은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다. 아들은 어둠이 내린 부대 안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조수석에 쓰러졌다. 아내는 운전대를 잡고 눈길 속을 조심스레 달렸다. 휴게소에서 잠간씩 눈을 붙이면서도 운전은 계속되었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통영에 도착하였다.

추운 겨울이면 아들 면회를 다녀온 강원도 원통 그리고 그때의 시간들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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