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의 발상지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한국 디자인의 발상지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 김선정 기자
  • 승인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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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최초 교육기관 국가등록문화재 예고
12공방 전통 이은 미술교육 산실 의미 살려야

항남동 소재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이하 양성소)’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난 6일 등록예고(문화재청공고 제2020-308호) 되었다. 통영 장인의 역사 문화적인 전통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기에 진작 되었어야 할 일이지만, 이제라도 되었으니 반가운 일이다.

이곳은 국민화가 이중섭이 2년여 동안 머물며 데생을 가르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북 출신의 이중섭은 1950년 전쟁에 피난 내려와 1956년에 사망했다. 그 짧은 6년 동안 그는 서울, 부산, 통영, 제주 등을 떠돌아다니며 살았는데, 통영에는 1952년부터 2년여 동안 살았다.

어려운 시대,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통영에서의 2년은 등을 대고 누울 직장인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가 있었고, 교류하는 예술인들이 있어 비교적 따뜻한 시간이었을 테다.

천재화가를 기념하기 위해 통영시는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자리 앞에 ‘이중섭 머물던 곳’이라는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가 이중섭이 머문 곳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은 6.25전쟁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었을 때, 통영 12공방의 전통 전승과 문화재 복원을 위해 생긴 전후 최초의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강점을 벗어난 지 겨우 5년, 식민지 교육이 아닌 우리 교육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을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1년,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가 문을 열었다.

‘왜 통영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보면 이 교육기관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알 수 있다. 통제영 12공방이 있었기에 통영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통영은 명실공히 공예의 중심지였다. 12공방 중 직접적으로 옻칠을 하는 상칠방, 하칠방은 물론, 나전을 만드는 패부방, 소목방, 주석방까지 나전칠기와 관련된 공방은 가장 큰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통제영이 폐영된 뒤에도 12공방의 장인들은 개인 공방을 운영하며 도제 방식으로 기술을 전수했다.

전쟁 직후 생긴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는 최초의 학교식 기술 교육기관이다. 도제 방식이 아닌 과목별 교육방식이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세계가 인정한 장인 김봉룡 선생이 나전칠기를 가르치고 함경북도 출신의 염색공예가 유강렬 선생이 주임강사로 도안과 제도를 가르쳤다.

옻칠기법은 안용호, 데생은 장윤성, 건칠은 강창규 등 쟁쟁한 교수진이 포진했다. 이들은 모두 일본과 유럽에서 미술을 전공한 재원들이다.

나전, 옻칠뿐 아니라 데생, 디자인, 설계, 제도를 이론과 함께 가르쳤으니, 단순히 기술자를 만들어내는 양성소라기보다 미술대학의 전신이었다.

김성수 관장은 “나중에 홍익대학에 출강하게 되면서 보니, 1951년에 그런 교육을 한 대학은 국내 어디에도 없었다.”고 술회하면서, “우리나라에 ‘디자인’이라는 말이 들어오기도 전에 디자인을 가르쳤으니, 이곳이 바로 ‘한국 디자인 교육의 발상지’라는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1952년 주임강사였던 유강렬은 같은 이북 출신의 이중섭을 초청, 이곳에서 데생을 가르치며 그림을 그리도록 지원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김성수 관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중섭과 유강렬 선생은 항남동 인근에서 하숙을 하며 기술원 양성소에서 가르쳤다고 한다.

유강렬과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가 없었으면 이중섭이 통영에 올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경남도립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는 이후 11년간 이어오다가 1962년에 충무시(현 통영시)로 이관, ‘충무시공예학원’으로 8년간 존속했다. 1971년부터는 ‘충무시종합공예연구소’로 변경해 1975년까지 이어졌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이곳은 설계용역을 거쳐 전시공간 및 교육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통제영 12공방을 계승하면서, 현대 미술 교육의 효시를 이룬 곳, 한국 디자인 교육의 발상지, 근현대 융성했던 통영 공예 문화의 근간으로서의 의미를 먼저 살려야 한다.

그러자면 유강렬과 김봉룡, 장윤성, 김성수, 이형만 같은 이의 역사가 먼저 담겨야 한다. 그런 가운데 천재화가 이중섭의 스토리텔링이 보태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