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조건
엄마의 조건
  • 통영신문
  • 승인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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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나의 어머님은 말씀이 적고 반듯한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엄격하였다. 가족을 위한 희생의 깊이는 아무리 깊어도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였다. 중학교 3학년 봄에 식중독이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밤새워 산을 넘고 공동묘지를 거쳐 새벽에 나의 자취방에 도착하였다. 훗날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저녁 10시에 인편으로 소식을 전달 받고 선 자리에서 바로 출발하여 다음날 새벽 5시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어렴풋이 정신을 차렸을 때 어머님이 머리맡에 계셨고. 어머님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 왔다. 알람시계도 전기불도 없는 그 시절에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자식의 아침 밥상을 머리맡에 차려 놓고 나를 깨웠다. 고름이 번지는 몸에 입으로 고름의 뿌리까지 빨아 낫게 하였다. 자식을 위하는 일에는 더럽고 힘들어도 전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님이 별세하시고 어머님은 고향을 떠나 우리집에서 나의 자식들을 키워 주시면서도 그 엄격한 부분은 계속되었다. 두 살 터울의 손자 셋이 있는 집안의 분위기는 다툼이 잦고 그로 인하여 울음이 많았다. ‘우리 손자는 진양 정씨 가문의 소중한 양반이며 남자 아이다. 그리고 남자는 어떤 경우든 울면 안된다’라고 가르쳤다. 아이들은 참으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였고 당당한 사나이로 컸다. 손자들에게 가정의 규율을 가르쳐 주신 덕분에 오늘의 우리 가정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직장 생활하는 아내가 아들 셋을 두었으니, 당시 한 명만 낳자는 캠페인이 한창일 때이니 국가 정책으로는 맞지 않는 가족계획이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또한 대학원생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조용하면서도 늘 공부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침이면 폴모리아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고, 휴일이면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면서 힘든 아이들의 학업을 응원하였다. 아내는 남편이 정한 가족 규율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동의하여 주었다. 아침 5시 30분 기상, 아침 구보, 체조 등으로 나의 의견이 우리집의 전통이 되었다. 곡절 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는가? 고비마다 자식들에게 아내의 모습은 헌신 그 이상의 모습이었다. 아들이 결혼하고는 며느리가 전근하여 와서 우리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 시부모님이 있기에 통영으로 전보를 신청하였고 한다. 덕분에 오년 째 우리집에는 손자, 며느리 그리고 우리 부부의 다섯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새벽까지 일에 매달리는 며느리는 아침 6시에 눈을 비비면서도 가족들의 아침 조깅에 동참하고 있다. 다섯 가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뜀박질을 하고 운동과 체조도 같이 한다. 그리고 맞이하는 아침 식탁으로 하루를 연다.

당신은 누군가의 엄마이면서 아내이다. 또한 누군가의 딸이고 며느리이다. 가족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 덕분에 우리에게 오늘이 있다. 약한듯하면서 강하고, 강한듯하면서 유연한 분이다. 평생을 자기 혼자가 아닌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한 당신의 노력이 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는 당신이 있다. 당신은 우리의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