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일본 나리타국제공항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일본말이 서툴러 공항에서부터 지인의 도움으로 동경 시내의 게스트 하우스까지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그때부터 일본어 배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동사무소에서 일본어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대학을 정년퇴임한 자원 봉사 교수로부터 일본어를 배웠다. 우리와 처지가 같은 몇몇 분이 같이 하였으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동경대학의 어학 과정에 등록하여 본격적인 언어 교육을 받았다. 언어 교육, 음식 만들기, 관광지 답사 등을 통하여 언어와 문화 교육을 받으면서 차츰 일본어를 익히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방송언어가 귀에 들어오고, 대학 연구실의 연구회의가 차츰 익숙하여졌다. 일본인들과의 어울림이 커지고 적응이 될 무렵 귀국길에 올랐다.

인도네시아로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언어 장벽으로 걱정이 앞섰다. 우리대학으로 유학 온 인도네시아 유학생으로부터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우리 부부 그리고 대학생 세명과 같이 일주일에 삼일씩 저녁시간에 공부를 하였다. 저녁의 나른함 그리고 식곤증까지 겹쳐 수업시간에 깜빡 조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러나 매일같이 수업 전의 테스트 때문에 복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교수 입장에서 제자 학생에게 체면치레를 하여야 하는 고충도 있었다. 그 덕분에 인도네시아 1년을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다. 아내는 그곳 교수 부인들과의 모임과 여행도 즐겼다.

태국에서의 생활을 꿈꾸어 파견 명령까지 받았으나, 언어를 모르는 입장에서 고민이 되었다. 태국어 책과 CD로 독학을 시도하였으나 외국 언어를 홀로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시청 홈페이지에 광고를 내어 결혼여성이민자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1주일에 3일씩 방과 후에 그분으로부터 태국어를 배웠다. 친절하고 가르치는 실력도 대단하였다. 온갖 교보재를 이용하고 우리 부부를 경쟁시키는 교육 기술까지 구사하였다. 늘 아내가 1등이고 나는 2등을 하였다. 구두시험과 필기시험을 수시로 치는 바람에 심적 부담도 컸다. 그러나 태국에서의 1년은 참으로 행복하였다. 태국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대학 생활을 그 여느 때 보다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배운 영어를 비롯하여 많은 언어를 접하고 사용하고자 노력하였으나, 돌이켜 보면 어떤 외국어도 제대로 구사하는 것이 없다. 오직 우리나라의 한글만이 나의 소통의 언어 도구이다.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언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정년을 앞두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학사 학위와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그리고 통영의 결혼 여성이민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나섰다. 나는 부족하지만 한글로 시(詩)를 쓰고 칼럼도 쓰고 있다. 「한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었다. 가수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세계인이 같이 말 춤을 즐긴다. 방탄소년단(BTS)은 세계인을 흥분시키며 빌보드 싱글 1위를 달성하였다. 제574돌 한글날이다. 세계에는 고유의 우리나라의 언어 「한글」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다. 「한글」을 창제하고 발전시켜 주신 분들의 수고와 노력에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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