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일생기를 보여 주기 시작한
그를 조우한 아침에는
강 저편 이들과 합의가 끝난
몸짓을 하고 있다

햇살이 갈라져 들어오는 꽃발(花簾) 끝마다
세상에게 보내는 신호대로
우아한 산제비나비가 남보라 날개로 서곡을 펼치면
깊은 땅에서 끌어 올린 들큼한 어린 날이
연한 꽃대 복판에 고여 있다

밤낮을 잊지 않고 살아온 꽃으로 보내 놓고
어린 나를 두고 총총히 떠난
그 사람은 어찌 그리도 모질었던가
담아 두고도 넘치지 못하는 눈물로
해야만 될 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 시간을
몸을 사루어 흩날려도 잊을 수 없어

꽃마다 머금은 정명(精明)한 빛
죽어 뼈만 남은 극치의 인연만
잊지 않고 대신 살아가는 정원에
꽃잎 바스라져도 기다리는 소리는
그 사람 걸어오는 소리


* 꽃무릇: 어린 나에게 처음 꽃무릇을 보던 순간을 ‘눈이 번쩍 뜨였다’라고 표현한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참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꽃무릇은 뿌리가 마늘을 닮아서인지 석산이라는 한자명을 가지고 있고, 독성이 강하다.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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