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전 통영해양과학대학 교수

수년 전 미국의 Maryland주 소속의 요트 한척이 통영항을 방문하였다. 총톤수가 80톤에 불과한 범선인데, 대서양에서 파나마 운하를 거쳐 태평양을 건너와 동남아 국가를 순방 중이라고 하였다. 근해어선의 크기에도 미치지 않는 작은 배로 대양항해를 하다니 놀라움이 앞섰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하루도 안 걸릴 거리를 한달 여에 걸쳐 대양의 산더미같은 파도와 싸우면서 항해했다는 그들은 성취감과 자긍심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이것이구나. 바로 이 힘이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저력이구나. Frontier 정신, 이 지칠 줄 모르는 개척정신이 지금의 세계 최강국을 이룩한 원동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인이나 한국인 또는 다른 개발도상국 사람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단지 출생지가 다른 이유로 어떤 이는 선진국에서 풍요롭고, 어떤 사람은 분단국에서 고단하고 또 어떤 이는 빈민국에서 굶주린다. 불공평한 일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차이는 그들의 조상이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불과 100여 톤의 작은 배를 타고, 생사를 초월한 난관을 헤치며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을 때, 우리의 조상들은 어디에 있었으며 영국의 James Cook 선장이 호주, 뉴질랜드 등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마젤란이 세계를 일주할 때 우리의 선조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고,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에서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섬과 같은 처지이다. 바다를 통하지 않고는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그런데 바다에 나가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천시하고 뱃놈이라 비하한다.

뱃사람은 무시해도 무방한 존재일까. 영국에서는 뱃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대우한다. 대영제국을 건설한 사람이 곧 뱃사람이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생적으로 바다와는 맞지 않아서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형질에는 바다를 능히 개척할 소질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상왕 장보고가 동북아의 바다를 제패했었고, 이순신의 거북함대는 해전 역사에 전무후무한 전적을 남겼으며, 현재 우리나라는 선박 건조 세계 1위인 조선강국이다. 바다에 관해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관록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바다에의 역량을 결집시켜 세계로 나가야만 우리의 활로가 열리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미국의 젊은이들은 목숨을 걸고 작은 배로 대양을 건너는데 우리의 젊은이들은 안정된 직업만을 고집하며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우리나라의 엘리트집단들이 어려움을 마다않고 세계각지의 미개척지로 다투어 진출하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고도의 경제 성장에 해외진출이 큰 몫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어느 정도 나아진 지금은 어렵고 힘든 개척분야를 기피하는 풍조가 뚜렷하다. 바다는 고사하고 현장의 어려운 일도 기피대상이다. 너도 나도 의대나 법대로 몰리고 있다. 선박으로 치면 의사나 변호사는 기관의 윤활유 역할이다. 연료유가 있어야 배가 움직인다. 연료유는 없이 윤활유만 생산하면 선박은 항해할 수 없다.

바다를 제패하는 나라가 세계를 제패한다고 하였다. 한민족의 활동무대로서 우리 국토는 좁고 우리의 역량도 커졌다. 바다와 세계를 개척하며 한민족의 영역을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정신은 개척정신이다. 온 나라의 젊은이들이 바다와 세계를 개척하고자 노력할 때 대한민국은 선진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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