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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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신문
  • 승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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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설날이 다가오면 가슴이 설렜다. 동네 아저씨들이 공동으로 돼지 한 마리를 잡기로 하고, 해거름쯤 돼지 잡는 일들이 동네 한쪽에서 이루어졌다. 돼지의 울음소리가 나면 우리들은 그곳으로 달려가서 그 일을 구경하였다. 우물가에서 고기를 저울에 달아가면서 가르고 나누는 일을 하는 것도 참 신기하기도 하고 즐거운 구경거리였다. 그날 저녁이면 맛있는 돼지비계 김치찌개를 맛볼 수 있었다. 절구통에 떡방아 찧기는 어른들이나 청년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단술을 만드는 일을 도우면서 달콤한 단술을 한 모금 마시기도 하였다. 조청을 고우고, 엿을 만드는 일이 재미로 따지만 최고였다. 밀가루를 손에 묻혀 가면서 엿가락을 당기고 합하는 일도 참 재미있는 일들이었다.

설날을 대비한 오일장에 어머니를 따라 나설 수 있는 날은 큰 행운이다. 장터에서 이루어지는 시끌벅적한 풍경은 흥분 그 자체이다. 간혹은 사탕도 먹을 수 있고, 국밥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하였다. 설 치레 바지나 잠바를 살 때에는 어머니와 나는 옷의 치수로 인한 마음 일치를 보지 못하여 늘 서운하였다. 분명히 나에게 큰 옷인데 어머님은 맞다고 하니 설명이 잘 되지 않았다. ‘조금만 지나면 딱 맞다’는 여운을 남기기도 하였다. 다음에 클 것을 대비하여 헐렁한 바지라도 하나 입을 수 있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면서 그날을 즐겼다. 과일과 생선 등 제수거리를 가지고 어머니와의 귀가 길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설날이 이삼일 정도 남았을 때부터 멀리 있는 형님, 누님 그리고 사촌들도 우리집으로 왔다. 식구가 늘어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어느 집에 누가 오는 지도 궁금하였다. 많은 사람이 오는 집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설날 아침이면 차례 준비에 여념이 없다. 갖가지 과일들과 정성스럽게 준비한 제수들을 상 위에 올리는데, 차례 상을 차리는 것이 신기하였다. 진설(陳設)하는 원칙이 까다로웠다. 차례 상이 차려지면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줄지어서 절하였다. 세배하고 덕담 들으며 세뱃돈도 받는 날이니, 어찌 그날이 좋지 않겠는가? 30여 집이 살고 있는 우리 동네의 모든 집에 세배를 다녔다. 가는 집마다 맛있는 과일과 과자를 내어놓고 때론 세뱃돈도 받으니 매일이 설날이길 바라기도 하였다.

올해 설날에도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온 가족들이 모이고,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행복한 정경이 가정마다 펼쳐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