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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심청(1972년)

1969년 3월 30일, 동료 음악가들의 국제적 항의와 독일 정부의 조력으로 석방된 선생은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독일로 돌아갔고, 1971년에는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민족의식이 지극했던 선생이었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계속되는 악몽 등 동베를린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의 옷을 바꿔 입듯 취득한 다른 나라의 국적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조국이 민주화되고 남북이 화해되면 다시 옷을 바꿔 입을 계획이었기에, 세계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에서 선생은 ‘한국의 작곡가’로 스스로를 소개했고, 단 한 번도 독일 작곡가라고 소개한 적은 없었다.

고통의 시간이 있으면, 환희의 시간도 오는 법이다. 1972년에 개최된 뮌헨 올림픽은 선생에게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들고 왔다. 올림픽위원회가 올림픽의 서막을 여는 축전 오페라를 선생에게 위촉한 것이었다.

일생일대의 행운을 얻은 선생은 동아시아적인 것을 쓰리라, 이제까지 중국의 이야기를 소재로 썼지만 이번에는 한국의 이야기로 한국의 것을 세계에 알리리라 결심했고, 삼계(三界) 차원의 한국의 우주관과 유불선 세계관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심청전을 선택했다.

한국 문화의 정확한 고증을 위해 연출가와 대본가를 한국으로 보내 견학시키고, 의복에서 짚신, 갓, 탈, 뱃사람들의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준비하여, 1972년 8월 1일 뮌헨 오페라 극장에서 볼프강 자발리슈 지휘, 귄터 레너트 연출로 오페라의 막이 올랐다.

2막, 서주, 간주로 구성된 긴 공연이 막을 내리자, 관중들은 열광적 박수를 보냈고, 선생은 환성과 갈채 속에서 몇 번이나 무대에 불려 나가 인사를 했다. 불과 3년 전까지 고국에서 세 번이나 사형을 구형받았고, 가혹한 고문에 자살까지 기도했던 선생이 인류의 행사인 올림픽의 서막을 여는 무대에서 예술가로서 영광의 절정에 선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아름다운 성에서 열린 연회에서 올림픽위원회는 뮌헨올림픽 문화 행사 부문의 금메달을 선생에게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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