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추리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있으나, 사실 심리소설 쪽에 가깝다. 나의 일상을 누군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고 있는 이가 있을 수 있다. 나의 기억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애인이 살해되었는데 모든 증거는 나를 향하고 있다. cctv에 찍힌 용의자의 모습 또한 나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범인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다. 흥미진진하게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계속 꼬이고 궁지에 몰리는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이 소설이 바로 심리소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설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범죄 세계의 나폴레옹”-셜록홈즈가 적수 모리어티의 범죄 연출 능력에 탄복하며 썼던 이 표현을 문학평론가 조형래는 노희준을 수식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범죄 이야기를 정교하게 짜 내는 노희준의 능력은 단연 독보적이다. 단편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와 장편 <킬러리스트>에서 이미 예견된 그의 능력은 이번에 소개하는 책 <넘버>에서 절정에 달한다.

‘나/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유일하게 가능한 답변은 다음과 같은 명제다. 너는 나 그리고 나는 너. 외피라는 공백에 기입되어야 할 것은 이것이 전부다. 이것이야말로 타자의 진정한 얼굴이며 패치워크의 조각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통합하는 유일무이한 가상이다. <넘버>의 주인공 대현과 이명은 상호 모방을 통해 가장 치명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회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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