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문화상 수상
서울시문화상 수상

“피아노 3중주”와 “현악 4중주”로 1955년 제5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음악 부문에 선정된 선생은 1956년 4월 11일 서울시 공관 수상식장에서 상장과 부상으로 상금 10만 원을 받았다.

10만 원! 당시로는 매우 큰 금액의 돈을 받아든 선생은 꿈에 그리던 유럽 유학과 가장으로서의 책무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었는데, 부인이 명쾌하게 선생의 진로를 결정해 주었다. “나는 아이들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친정집 근처에 살겠어요. 어느 학교에서건 교사 노릇을 하며 내 생활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당신 소원대로 하세요.”

서울시 문화상 상금과 성북동 집을 팔아 유학비용을 마련하기로 했고, 부인은 부산 초량동 형부 집 아래채 두 칸을 빌려 자녀들과 살기로 했다. 생활비는 부산남여중 국어 교사로 복직하면서 해결되었다.

남북장(南北莊)에서 선생의 프랑스 유학 환송회가 열렸다. 이흥렬을 비롯하여 한국음악단체연합회 인사 등 4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선생은 다음과 같이 인사했다.

“... 이번 유학은 체불 중인 박민종 씨의 초청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나, 그러나 자신은 많이 주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인생의 내리막 고개에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할 것이라 염려한 때문이며, 가족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생을 가르칠 때나 작곡할 때나 항시 자신의 미흡을 통감했고 또한 견문세계가 좁은 것을 괴로워했었기에 이러한 고민을 털고 다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까 하는 일루의 희망 밑에 용기를 내어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이제 파리에 발을 디딜 나는 마치 해변 백사장의 모래알과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로지 생리적으로 갖고 있는 한국적인 것들을 살리며 조국에 대한 애정과 나라에 대한 책임감을 잊지 않으며 한국의 음악도로서 본분을 지켜 사명의식에 충실하며 오직 성의와 노력에 일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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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서울시 문화상 수상(1955년). 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가 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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