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왜 성소수자를 인정 못하나?
기독교인들은 왜 성소수자를 인정 못하나?
  • 통영신문
  • 승인 2018.1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기 목사

성 인식에 대한 시각

(교정중에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문장이 만들어졌다는 필자의 건의에 의해 일부 문장을 수정하였습니다.-편집자 주)

소수자에 대한 인권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오늘날의 사회는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아낌없는 배려를 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누구보다 소수자와 약자를 사랑해야 할 기독교인들이 유독 동성애에 대해서만은 집단의 소리를 내며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경남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교회를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교회는 학생인권을 보장해 준다는 취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조례 속에 있는 ‘다양한 성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인들은 창조를 믿고 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 모든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창조에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가 되었어야 하는데 여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본인이 어떻게 여기는가 하는 것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판단과 상관없이 그의 염색체와 외양으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이다.

한때 남성과 여성을 나누어 각각 화성과 금성에서 온 것처럼 많은 차이가 있다고 여기며 서로의 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 남성은 어떻고 여성은 어떻다는 식의 구분을 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그런 구분은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점에서는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도 80% 선에서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지, 100% 딱 들어맞는 점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공간지각력이 뛰어나지만, 여성 중에도 남성 못지않게 주차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성 중에도 각도 계산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여성성(이 말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페미니스트들이 있겠지만, 흔히 생각하는 의미로 이해하고 넘어가자면)을 가진 남자도 있고, 남성성을 가진 여자도 있다.

오히려 성 정체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유교적인 풍토 아래서 남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며 씩씩해야 한다는 사회적 성이 만들어진 것이지, 이런 속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남자의 성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드러운 성품, 선이 가는 외모, 여성적 취향, 심지어 여성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도 그의 염색체가 XY이면 남성이지, 여성으로 태어났어야 할 남성이 잘못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적 취향은 어떤가? 성소수자들은 천부적으로 이성간에는 사랑을 느낄 수 없고, 동성간에만 사랑을 느끼는 성적 취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 불가항력적인 슬픈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면서 성소수자를 보호하자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랑에는 섹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뢰, 애착, 연민, 소속감, 보호, 우정 같은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간의 사랑도 당연히 이해받아야 할 소중한 감정으로 존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표현된 동성간의 성관계다. 이를 제외한 신뢰, 우정, 연민, 애착 등은 하나님이 주시는 신성한 감정으로, 성별을 떠나 모두에게 허용되는 고귀한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다윗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한 남자가 나온다. 재위기간 내내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몰고 다녔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 왕자다. 성경은 요나단이 얼마나 다윗을 사랑했는지,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고 말한다.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요나단 왕자는 밥도 먹지 않고 슬퍼하며 운다. 그리고 아버지 몰래 다윗을 타국으로 피신시키면서는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라(삼상20:41)” 하며 애절한 이별을 한다.

다윗도 요나단을 사랑하여, 요나단이 전사했을 때는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삼하1:26)”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렇게 숭고한 사랑을 한 다윗과 요나단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가 아니었다. 성경은 다윗의 범죄에 대해 가감없이 밝히고 있는데, 그가 남의 아내를 빼앗은 일을 두고 하나님은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27)”고 기록한다. 이 일로 다윗은 백주에 아내를 빼앗기는 갚음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만약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하나님이 금하시는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일이 있었다면 하나님이 좌시하셨을 리 없다.

성관계를 배제한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을 성경은 고귀한 일로 기록하고 있다. 왕위 계승자였던 요나단은 남자가 남자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다윗에게 기꺼이 자기 자리였던 왕위를 내주었고, 다윗을 변호하다가 아버지가 쏜 창에 맞을 뻔도 했으며, 아버지를 배신하며 다윗을 도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그들은 그렇다치고, 평범한 동성애자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사랑은 필연적으로 육체적 욕망을 동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성경이 성적 취향을 가진 성소수자에게 너무 가혹한 굴레를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기독교인들이 믿듯이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하나님은 이런 성적 취향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