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필언 통영경제사회연구소 이사장, 전 행정안전부 차관

서필언 통영경제사회연구소 이사장
전 행정안전부 차관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이건희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 유족 측이 평소 고인이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미술품 등 23,000 여점을 국가에 기증하기로 발표함에 따라 소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방대한 ‘이건희미술관’을 전시할 별도의 공간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고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가자, 전국의 지자체들이 저마다 명분과 당위성을 내세우며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미술계 일각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을 위주로 국립근대미술관을 수도 서울에 건립하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경북, 세종 등 광역지자체와 평택, 오산, 용인, 수원, 청주, 경주, 여수, 창원, 진주, 의령 등 기초지자체들은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예술 역량을 지방에 분산해야 한다는 균형발전론과 연고, 입지조건 등 각자의 논리를 개발하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의 경제적,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른바 ‘빌바오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빌바오 효과’란 쇠락하던 스페인의 공업 항구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하여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급부상한데서 생겨난 말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시설 가운데 36%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고 특히 미술관은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문화예술 균형발전과 문화분권이라는 측면에서 ‘이건희미술관’을 수도권보다는 지방에 분산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통영도 손을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일이 결코 아니다. 통영은 근·현대를 통하며 윤이상, 김춘수,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전혁림 등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예술의 고장이다. 평소 고 이건희 회장이 각별히 애정을 가졌던 이중섭 또한 통영과 인연이 깊다. 이중섭은 1952년부터 2년여 통영에 거주하며 예술활동 전성기를 보냈다. '황소'를 비롯해 40 여점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탄생하였다.

통영시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미술품 가운데 이중섭 작품을 통영시에 기증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수준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건희미술관’을 통영에 유치하는 일에 당장 발벗고 나서야 한다. 우리 통영은 정부에 ‘이건희미술관’ 유치를 강력히 요청할 충분한 명분과 당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통영은 예술이 만개한 전통적인 예향의 도시라고 하는 점, 문화 예술의 지방분권을 통하여 국가의 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을 수 있다는 점, 특히 호남보다는 영남의 문화 예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 규모가 큰 도시보다는 작지만 큰 잠재력을 지닌 강소도시를 지역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집중 부각시킨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가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요한 명분은 바로 지난 2017년 말 현 정부의 상징적인 제1호 도시재생프로젝트로 추진중인 ‘봉평지구 도시재생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 동 사업의 중요한 내용 중에 중앙정부가 직접 컬쳐센터, 아트빌리지 등 복합 문화예술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이를 ‘이건희미술관’ 건립사업과 연계하는 것이다.

원래 ‘봉평지구 도시재생사업’은 현 정부가 옛 신아sb조선소 터를 활용해 국제적인 문화, 관광, 해양허브를 조성하고 글로벌 관광거점을 마련한다는 목표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탄력을 받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끝나 간다고 해서 이 프로젝트도 흐지부지 끝나서는 안된다. 이 사업에 거는 우리 통영시민들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말뫼니, 통영의 구겐하임이니 하는 큰 기대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통영의 문화 르네상스 성패가 이 사업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통영시는 이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정부에 요청하여야 할 것이다. 추진 속도가 다소 늦어질 수는 있지만 백지화가 되어서는 안된다. 여기에 더하여 기존의 컬쳐센터, 아트빌리지 등 복합 문화예술시설 건립을 통영국립미술관 (국가가 건립하는 이건희미술관 개념임) 건립으로 변경시켜 줄 것을 정부에 강력히 건의하고 전 시민의 힘을 모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예전과 달리 한층 좋아지고 있는 통영의 교통편의성과 주변환경도 이를 지원할 매우 고무적인 요인이다. 남부내륙철도에 이어 최근에는 거제시~한산도~도남동 미륵관광특구를 잇는 국도5호선 연장노선이 확정되었다. 창원~거제~통영을 하나로 묶는 고리형 도로망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이 가세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러한 사업들이 마무리되면 통영을 중심으로 한 한려해상국립공원 일대가 새로운 국제 관광거점으로 부상하고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적인 지역이 될 것이다. 이 또한 정부를 설득할 좋은 명분이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미래는 우리가 하기에 달려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우리가 사활을 걸고 달려들어 노력해야만 중앙정부도 설득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논리를 탄탄하게 개발하여 중앙정부와 경남도 등 관계 요로로 돌진하자.

이중섭이 통영에서 그린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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