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

정동영 경남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

흔히들 지방자치제를 민주의식 배양의 요람이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이야기한다. 선진 민주국가일수록 중앙과 지방과의 격차가 적은데, 그것은 시민들의 높은 자치역량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균형 잡힌 발전을 논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선진 민주국가들은 지방자치제를 매우 중요한 제도로 여기며 이것의 보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의 헌정사는 그러하지 못했다.

8.15 광복과 함께 출범한 이승만 정부에서는 지방자치제가 민주주의의 핵심 제도라는 점을 인식하고 제헌헌법 때부터 지방자치제에 대한 조항을 규정하였는데, 특히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최초의 지방선거를 치룰 만큼 제도 정착을 위해 당시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때 우리 통영도 열띤 관심을 보이며 읍·면의회가 구성되었는데, 1955년에는 통영읍이 충무시로 승격되면서 초대 충무시의회 의장에는 김기석 씨가, 초대 충무시장에는 시의회의 간선으로 김기섭 씨가 각각 선출되기도 했다. 시군구가 기초자치단체인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시읍면이 기초자치단체 였는데, 본격적인 도시화 이전이어서 시의회가 구성된 곳은 전국에 채 20여개도 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영이 부산, 마산, 진주에 이어 경남에서 광복 후 최초로 시로 승격되어 기관을 구성한 것이어서 당시 통영은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렇게 자치의 꽃을 막 피우고 있던 1961년, 갑자기 발발한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지방자치제는 전면 정지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는 지방자치제에 대해 조국 근대화를 달성하는데 비능률적이고 거추장스러운 제도라고 폄하·부정하면서, 특히 1972년의 유신헌법에서는 아예 지방자치제를 조국 통일 시까지 유예한다고 하여 사실상 폐지하였다. 한마디로 지방자치제는 헌법전에만 규정된 장식적 제도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지속된 군사정부의 지방자치제에 대한 억압적 폭거는 1987년 6월 혁명에 의해 제정된 제6공화국 헌법에 따라 끝이 났다. 현행 헌법인 제6공화국 헌법에서는 지방자치제가 헌법이 보장하는 제도로 법률로써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임한다고 규정하여 헌법적 의미를 분명히 하였다.

이에 따라 1991년 충무시의회가 30년 만에 부활하였고, 새로이 기초자치단체가 된 통영군 역시 통영군의회를 처음으로 구성하였다. 또한 1995년에는 단체장까지 선거로 선출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통영의 경우 이에 더하여 충무시와 통영군이 합쳐진 통영시가 새로이 출범하게 되었고 초대 시의회 의장은 윤민희 씨가, 초대 시장은 고동주 씨가 각각 선출되었다. 필자 역시 2006년 제5대 통영시의회 의원으로 처음 정계에 입문하여 활동하였는데,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부활된 지방자치제는 착실히 시민들의 품으로 자리 잡아 갔다. 보통의 시민들이 의회에 등원하여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시민들의 고충을 덜어주기도 하였으며, 단체장 역시 관선 때와 달리 다양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방자치법이 단체장 중심의 강 단체장-약 의회 모형을 전제하여 시행되다보니, 시의 모든 권한이 시장에게 집중되었고 의회는 집행부를 적절히 견제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일례로 시의회 직원의 인사권조차도 시장이 갖고 있다 보니, 시의회 직원들은 의원과 의회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부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비유컨대 물 길러 온 아낙이 집에 있는 떡만 생각하고 물동이 속의 물은 생각지 않는다면 과장된 것일까? 또한 이 법 시행 당시에 없었던 많은 문제들, 이를테면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지방의 쇠퇴 현상이나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역 소멸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자치단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전반적으로 미흡하여 여러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위해 지방자치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었고, 특히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내년에 시행될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번 개정법에 따르면 주민들의 직접 참여권을 확대하여 조례 발의나 각종 감사 등에 대해 완화된 수의 주민 동의로 청구할 수 있게 하였다. 의회도 숙원사항이었던 집행부로부터의 실질적인 독립을 이루어내어 의회 직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의원 정수 1/2에 해당하는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확보하여 의원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집행부를 견제·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획일화된 틀을 넘어 각 자치단체의 의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조직을 만들 수 있게 한 것도 큰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취지를 더욱 잘 살려서 보다 살기 좋은 통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크게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주민의 자치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아무리 법이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법을 운용하는 사람의 역량이 먼저인 것과 같이, 개정 법안에 다양하게 규정되고 있는 주민 주도의 자치권한을 잘 활용한다면 여러 좋은 정책들을 주민들 스스로가 효과적으로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강화된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바탕으로 구성된 조직들과 시(市)가 협업을 통해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할 수도 있는데 필자가 앞서 제시한 TILA도 이러한 조직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이 사회의 발전을 이끈다는 명제가 통영에서도 증명되길 바란다.

둘째, 의회가 도덕성과 전문성의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개정 법안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의회의 권한 강화다. 강화된 권한에는 당연히 그 책임이 따르듯, 의회가 청렴한 도덕성을 무장하고 시정 전반을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맡은 바 분야에서 전문성을 향상해야 한다. 이번 LH 부동산 투기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도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게 되면 그 집단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회의 도덕성 확보는 필요조건으로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것이며 아울러 집행부를 압도할 수 있는 전문성을 확보하여 시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당당히 대변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이웃 자치단체와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통영은 역사적으로 고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으며, 거제 역시 1914년부터 1953년 분군(分郡) 전까지 통영군 소속으로 함께한 과거가 있다. 즉, 통영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인 고성, 거제는 비록 행정구역만 다를 뿐 동질감이 더욱 큰 지역이다. 이번 개정 법안에 따르면 다양한 형태의 행정기구들을 만들 수 있는 만큼,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 통영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남부내륙고속철도의 개통과 가덕도 신공항의 건설은 고성과 거제의 통영 이탈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이러한 연합 단체를 결성해서 남부경남에서의 통영의 역할을 확대·유지해야 할 것이다.

올해는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공자도 일찍이 나이 서른은 이립(而立)이라 하면서 세상에 홀로 자립할 수 있는 때라고 했다. 비록 우리 헌정사에서 고난과 시련이 많았던 지방자치제지만 이제는 어떠한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헌법적 제도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지난 66년 전 초대 충무시의회가 개원 되었을 때의 그 열정을 생각하며 13만 통영시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여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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