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손녀 백일이 다가왔을 때 과연 무엇을 선물하느냐가 고민이었다. 백일 반지를 사야 하는지, 백일 떡을 선물하여야 하는지, 수고한 며느리에게 옷 한 벌을 선물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며칠간 우리 부부는 고민을 하였다. 날짜는 다가오고 결국에는 백일 금반지를 하나 샀다. 금방에서 하는 말인즉 아기 금반지 하나 사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가만 생각하여 보니, 그것이 가장 간단하고 의미도 있어 보였다. 아들 집 거실 벽에는 풍선장식을 하였고 식탁을 벽면에 붙여서 제법 그럴싸한 백일 상이 차려졌다. 천장으로부터 내려오는 풍선으로 아이가 좋아할 분위기는 충분히 연출이 되었다. 하얀 시루떡에는 ‘백일’의 글자도 새겨져 있었다. 앙증스러운 옷을 입고 모자도 쓰고 있으니 예쁜 공주의 모습이다.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그간 수고하고 고생한 며느리와 아들에게도 축하와 격려 그리고 덕담도 하였다. 사돈 가족들과의 만남도 화기가 넘쳤다. 우리는 아이의 손에 금반지를 끼워주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손자들을 데리고 온 큰 아들 가족들도 기쁨을 같이 나누었다. 큰 며느리는 백일 상에 작은 케이스의 선물을 올려 주었다. 둘째 며느리가 그것을 열어 보고는 활짝 웃었다. 다름 아닌 조그마한 금 숟가락이었다. 금 숟가락을 받은 손녀는 참석자 모두의 박수와 함성을 받았다. 금 1.875g (반돈)으로 이렇게 깜직한 숟가락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였다. 손녀는 금수저를 갖고 태어난 셈이 되었고 즐거운 백일잔치는 그렇게 마쳤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도 금수저 출신이다. 1950년대, 농촌에서의 황금색 들녘을 누비는 유년의 추억을 갖고 있다. 가을에 만나는 들판은 벼농사의 절정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거닐면 그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가을의 풍성함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어디 그 뿐인가 금색을 띤 홍시가 주렁주렁 열린 뒷산이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뛰어 다니며 놀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홍시의 달달한 맛을 즐기기도 하였다. 조금은 배가 고프긴 하지만 그래도 고구마, 감자, 콩 등의 먹을거리가 주변에 많았다. 하교 길에 신작로 옆에 늘어놓은 파래를 주인 몰래 슬쩍 뜯어먹기도 하고, 남의 밭에서 고구마 한두 개를 파먹기도 하였다. 주인에게 들켜 혼이 났지만 그때뿐이다. 산천과 들녘 곳곳에 먹거리가 많았다. 배고픔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어울림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동네 어른들도 아이들의 그러한 일을 추억으로 여겨 주었다. 유년의 시간에 들녘을 달리면서 친구들과 함께한 일들이 이제 생각하니 나에게는 금수저의 시간이었다.

살아있다는 것 이상의 감사함이 어디 있겠는가? 부모님의 가르침과 이웃의 사랑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들이 모두 나에게는 금수저이다. 금수저를 받은 손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지나온 시간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나도 금수저 출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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