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농촌생활에서도 노래를 듣고 즐기기는 마찬가지이다. 힘든 농촌의 노동 현장에서는 노래가 일의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농촌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억 속에는 ‘동백 아가씨’, ‘월남의 달밤’, ‘유정천리’ 등의 애창곡들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나뭇잎 배‘도 나의 애창곡에 들어 있었다. 각종 잔치나 행사에서 노래 한곡을 하라고 하면 나는 늘 위의 노래들을 목청껏 불렀다. 도시로 고등학교 진학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고는 클래식을 접하게 되었다. 특히 대학에 입학하면서 음악과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에게 흠뻑 빠졌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하여 내용도 모르는 클래식 연주회와 음악회를 다녔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과 캠퍼스에서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는 모습에 반하였다. 아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주하던 피아노는 혼수품으로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아내가 연주하는 ‘소녀의 기도’와 ‘엘리제를 위하여’는 이제 귀에 익었고, 휴일에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로 행복감에 젖기도 하였다. 노래방에서 유행가를 부르는 재미도 있지만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이돌 가수들의 시대가 되었고, 나의 유행가 부르기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나 아이돌 가수의 노래 가사는 외우기조차 힘들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유행가 한두 곡을 부르고 나면 나의 노래 부르기는 끝이 났다. 그런데 최근에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흥행을 하면서 초등학생부터 트로트를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 트로트는 내가 어릴 때부터 즐기던 유행가이다. 가사의 의미도 알 수 있고 애환도 녹아 있는 트로트를 마음 놓고 다시 부르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하여 저녁 모임은 식사만으로 끝나야 하니 노래방에 가는 일이 없어졌고, 결국 나에게 트로트를 부를 기회가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트로트를 부를 분위기는 더욱 아니다.

올해의 연말쯤에는 코로나19로부터 자유스러워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때에는 지인들과의 만남도 자유스러워지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2021년 송년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아내에게 주문을 하였다. 당신은 피아노로 트로트를 연주하도록 하여 송년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유행가를 들려주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클래식만 연주하여 온 아내에게 조금은 무리한 주문 같은데도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그리고 며느리에게는 클래식 연주를 부탁하였고, 며느리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올해의 송년에는 지인들을 초청하여 우리 가족들이 준비한 작은 음악회를 갖고 싶다. 아내의 트로트 연주와 며느리의 클래식 연주가 어우러지면 멋진 송년의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벌써부터 하고 있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음악이 다시 세상에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콧노래로 트로트 음악을 흥얼거리며 골목길을 거니는 요즘이 나에게는 새로운 행복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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