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가전센터 김천식 대표

입구에는 가전제품이 쌓여 있다. 

쓰다 버린 냉장고, 세탁기가 겹겹이 쌓여 있는 중고재활용품 매장. 그러나 폐기 직전의 가전제품들 사이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서울 인사동의 고풍스런 찻집 같은 공간과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만나게 된다. 거기에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향기로운 커피향까지.

“다 치우고 카페를 차려야 할까봐요.”

재활용품 매장의 김천식 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커피잔을 건넨다.

커피 향이 향기롭다.

무전동에 중고상을 차린 지 10년, 이 공간은 이웃들이 드나들며 차 한 잔을 마시다 음악을 듣고 돌아가는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오래된 LP판, 첼로, 벽난로, 조각상, 서형일·염주옥 화백의 그림, 전서체로 된 서각 등등 저마다 해묵은 이야기 예닐곱 개씩은 족히 품고 있을 법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중고로 들어온 물건뿐 아니라 옛날부터 소장하고 있던 물건이나 값을 주고 구입한 것도 있다. 클래식과 그림을 사랑하는 그인 만큼, 멋스럽고 고상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중고상을 한 지는 15년 됐지요. 북신동 상공회의소 옆에서 한 5년 하다가, 여기를 사서 들어왔으니까요. 그닥 잘 되는 건 아니지만, 편안한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서 욕심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수익이 많지 않은 건 그가 재생물건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재생품이라도 들여놓아 구색을 갖추면 더 나을 텐데, 그는 말썽 많은 재생품을 갖다 팔 생각이 없다. 내 집이어서 셋돈이 나가지 않으니 종일 음악을 들으며 좋은 사람들 오고가는 사랑방 노릇을 하고 있는 데 만족할 뿐.

김천식 씨가 찍은 사진(위)을 염주옥 화백이 그려 주었다.

지난 6월 타계한 염주옥 선생도 병으로 앓아눕기 전까지 날마다 이곳에서 차를 마셨다.

“선생님이 그림을 그려준다고 하시길래, 제가 도남동 바다 사진을 찍어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 후에 선생님이 거의 몇 년 동안 그림을 못 그리셨으니 마지막 유고작이 돼버렸네요.”

통영 미술의 큰 스승이었던 염주옥 선생에게도 이곳은 편안한 사랑방이었다.

그의 중고품 가게에서는 하루 종일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그와 호형호제하는 서형일 화가는 “통영에서 최고로 음악이 좋은 곳”이라고 이 가게를 소개했다. 십대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해서, 앰프며 스피커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통영에 돌아왔는데, FM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이상하게 가까운 부산이나 진주 방송이 안 잡히고 광주 쪽 방송이 잡혀요. 그래도 통영이 문화도시인데, 음악 애호가들의 기본인 FM 청취가 어려운 건 진짜 아쉬워요.”

김천식 씨는 깨끗한 FM 주파수를 잡느라 안테나에만 100여만 원을 들였다. 이런 음악이 있는 곳이어서, 이웃들은 자주 “오늘도 힐링하고 갑니다.” 하는 말로 인사한다. 이곳에서는 FM뿐 아니라 클래식, 재즈 등 음악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청소년 때부터 그가 사 모은 음반들이다.

처음에는 현악기, 그 다음에는 모차르트로 넘어가며 그는 클래식에 점점 매료됐고, 나중에는 재즈로까지 폭이 넓어졌다. 그러는 동안 음반은 수천 장으로 늘었다.

“젊었을 때 사우디에서 10여 년 살다가 1993년에 돌아왔는데, 세관에서 짐을 풀면서 음반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의 보물 1호인 오디오와 대형 스피커, 2천 장이 넘는 LP음반들을 상품으로 볼 것인가, 개인 짐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세관원은 세금으로 2천만 원을 부과해야 한다고 했고, 그 실랑이에 소장까지 출동하게 됐다. 다행히 그가 오랫동안 소장한 개인 물품인 것이 인정돼 무리없이 입국하게 됐다.

중요한 음반만 몇 개 가게에 갖다놓았다.

“사우디에서는 8개 사업체를 운영하며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음악이 힘이 돼주었지요.”

딸아이가 한창 재롱을 부릴 18개월 때 데리고 들어가, 아들 둘을 사우디에서 낳았다. 1991년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그는 중동 한복판에서 전쟁을 보고 들었다.

요즘 그는 업종 변경을 생각하고 있다. 가전제품 수리와 판매보다 따뜻한 공간과 음악, 커피가 훨씬 마음에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보니 별시리 갈 데가 없습디다. 갈데없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차라리 카페가 더 나을는지….”

교사인 그의 아내도 내년에는 정년퇴임을 한다. 다시 가족이 더 소중해지는 시간, 그는 평생 친구가 되어 주었던 음악으로 고단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물하고 싶다.

예술품이 넘쳐나는 가게 안에서
중앙교회와 보건소 사이, 통영중고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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