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장장애인협회 통영지부장 한왕수

“신장장애인은 3일은 살아 있고 3일은 죽어 있는 인생입니다.”

이틀에 한 번 몸 안의 피를 모조리 버리고 새로운 피를 투석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여섯 시간, 병원에 누워 온몸의 피를 바꾸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다. 투석 받는 날, 실제적인 몸의 고통과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정신적 고통으로 신장장애인들은 죽음 같은 시간을 보낸다.

지금은 등급제가 폐지돼 그저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지만, 이전의 등급에 따르면 신장투석을 받는 순간 ‘장애2급’이 된다. 장애1급이 누워서 천장만 보고 사는 이인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무거운 장애란 말이다.

그래도 감사한 건 투석을 받은 다음날은 완전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학의 도움으로 소중한 ‘살아 있는 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통영에는 400명의 신장장애인이 있다. 투석의 고통과 번민을 알기에 서로 애틋하게 보듬고 살아가는 눈물겨운 공동체다. 그 중심에는 한국신장장애인협회 통영지부 한왕수(58) 지부장이 있다.

“한국신장장애인협회 통영지부는 2019년 7월에 설립됐습니다. 사실 그 전에 10여 년 동안 지부가 있었는데, 그전 지부장님이 2018년에 돌아가시면서 폐업이 돼버렸습니다. 사무실도 없고 일할 사람도 없으니까 쉽게 폐업이 된 거죠.”

전임지부장은 감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신장장애인들은 오늘 살아 있어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신장장애인들은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지부의 설립을 간절히 원했지만, 제 한 몸 살아내기 힘든 터에 앞장서 끌고나갈 사람이 없었다. 이틀에 한 번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 역시 해군 하사관, 해기 강사, 선장 등의 직업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인이었지만, 2004년에 고혈압과 신부전증이 발병했고, 2018년부터 투석을 받게 됐다.

통영시의 도움으로 마련한 협회 사무실

“가장 큰 문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누가 주 3일밖에 살아 있지 않은 사람들을 쓰겠어요? 저도 그렇지만, 신장장애인들 중에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장애인이 되어 병과의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은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실직, 이혼 등의 불행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한다.

협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 속에서 뜻을 모은 끝에, 지난해 다시 신장장애인협회 통영지부가 생겼다. 지부장은 한왕수 씨가 맡고, 박상권, 백광순 씨가 부지부장, 김성복, 박주찬, 박영준, 박상천, 이찬휘, 김용석, 성말선 씨가 이사를 맡았다.

폐업된 지부를 다시 살려내니 ‘신규’ 단체가 되고 말았다. 한왕수 지부장은 자비를 털어 사무실을 얻고 400명 회원들을 어깨에 짊어졌다. 하지만 월세 사무실은 협회의 짐이 되었다. 한 지부장은 이런 사정을 통영시에 알렸고, 시는 3천만 원을 지원해 올해 2월 정량동 한창마운트 앞 상가 4층에 전세 사무실을 얻어 주었다.

“여기로 이사 오는데 노인장애인복지과에서 많이 애를 써 주셨어요. 죽림의 장애인복지관은 평소에도 후원물품을 지원해 주시며 많이 신경써 주시는데, 이사비용과 살림살이를 도와주셨고, 김혜경 시의원님도 도와주셨죠.”

신장장애인협회를 만들고, 한 지부장이 회원들을 위해 처음 도전한 일은 주차장 운영권이었다. 공개 입찰에 참여해, 딴은 할 수 있는 최대 입찰금을 써내며 도전했지만 이미 여러 번 경력이 있는 다른 장애인 단체에 밀렸다.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며 그는 ‘기득권’이 얼마나 견고한 성인지, ‘도전’이 얼마나 무모한 무기인지를 체득했다.

“열한 명 아들이 있어요. 어느 자식은 먹고살 만하고 어느 자식은 굶어죽게 생겼어요. 만약 아버지가 있다면 죽어가는 자식에게 뭐 하나 나눠주지 않겠어요?”

열한 명 아들은 통영시 장애인 단체 11개에 대한 비유다. 그는 아버지 격인 ‘장애인총연합회’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장애인콜택시 사업계획서 중 일부

“작년에 여러 번 모여 회의를 했지만 지체장애인협회는 계속 참여하지 않았어요. 나머지 단체가 모여 중지를 모으는 가운데, 어느 날 통보가 왔어요. 지체, 농아, 척수가 모여 장애인총연합회를 만들었으니 회비를 내고 참여하라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지체장애인협회가 주차장, 자판기, 콜택시 등의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데, 연합회도 도맡아 하겠다니요?”

같은 장애인이면서도 없는 이의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현실에 피눈물이 났다.

최근 한 지부장은 10년째 지체장애인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콜택시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시간을 다투는 신장 환자들에게 콜택시의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열린 설명회에서 그는 “안 될 줄 알고 있지만 또 도전합니다.”라는 말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위급한 시간에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용남 차고지에서 대기하는 시스템의 개선과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시간인 8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집중 투입 방안, 기사들의 식사와 주유도 영수증으로 처리하여 동선을 줄이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장애인의 마음을 아는 신장장애인을 기사로 투입해 일자리 창출도 꿈꿨다.

각오는 했지만 결과는 좌절…. 이미 큰 탈 없이 운영해 온 기관의 노하우는 견고한 성처럼 느껴졌다.

“먼저 가진 사람이 반만이라도 나눠 주며, ‘너희도 운영해서 경험을 쌓아 봐라.’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은 신규도전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회원들을 위한 사업을 하나도 성사시키지 못하고 투석을 받는 수요일,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만 싶어진다.

“지부장, 살아만 있어라. 지부장이 살아만 있으면 된다.”

회원 중 가장 고령자인 84살 노인은 투석받는 날이 아닌데도 일부러 병원을 찾아와 한왕수 지부장의 손을 잡는다. 아무것도 이룬 건 없지만 함께 고통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 그는 오늘도 힘을 낸다. 그의 목숨은 이제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닌 통영시 400명 신장장애인의 것이다.

<정정합니다>
신장장애인협회 통영시지회장의 대사 중 일부에 대해 사)경남지체장애인협회통영시지회가 사실관계를 밝혀와 정정합니다.

1.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설립에 대한 해명입니다.

①회의 불참 사유는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9년 12월5일자 신장협회에서 보낸 「통영시 장애인 복지 단체장 및 시설장 모임」이란 제목으로 ‘통영시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설립과 임원 선출의 건이 안건’으로 받은 공문이 처음이었고,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니, 2019년 10월31일 사직한 사)경남지체장애인협회 통영시지회 전 국장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②통영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2018년 3월27일 사)경남지체장애인협회 통영시지회,사)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통영시지회, 사)경남농아인협회 통영시지회 3개 단체에서 공동대표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2019년 12월 13일 회의 자리에서 이미 구성돼 있는 단체에 ‘추가 가입을 할 것인지, 신규 단체를 만들지’에 대한 의논 끝에 추가 가입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이에 통영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는 2019년 12월16일 정회원 가입 안내공문을 발송하여 3개 단체가 입회 신청하였습니다. 2020년 1월20일 오후2시 이사회를 통해 한국지적발달장애인협회 통영시지부, 경남척수장애인협회 통영시지회, 사)느티나무경남장애인부모회 통영시지부가 가입 승인되어 총6개 단체로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2. 운영하는 사업에 대한 해명입니다.

사)경남지체장애인협회통영시지회는 무전제1공영주차장과 통영시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판기 사업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통영시교통약자특별교통수단의 경우 2018년4월1일부터 위탁운영하여 2년간 운영했으며, 2020년4월1일 재수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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