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선 대표 부부와 2대를 이어갈 조카

2018년 6월부터 중소벤처기업부는 30년 이상 한 우물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소상인과 식당을 ‘백년가게’로 지정해 100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19년 현재 전국에 129개 음식업과 도소매업이 선정된 가운데, 통영에는 호동식당과 거구장 2곳이 백년가게로 지정됐다.

지난 9월 9일 백년가게에 선정된 ‘거구장’은 33년간 소고기 요리만을 전문적으로 해온 한우물 가게다. 배정선(65) 대표가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외길을 걸어왔다.

“처음 시작할 때 지인들이 말렸어요. 소고기만 해서는 장사가 안 될 거라고 걱정이 많았지요. 어릴 때 할머니가 소고기를 쪼물쪼물 무쳐서 입에 넣어주셨는데, 그게 너무 맛있었어요. 그런 기억 때문인가, 저는 소고기가 귀한 음식이라고 생각돼 차별화된 식당을 해보자고 생각했지요.”

배정선 대표는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격이 다른 식당을 꿈꿨다. 소고기도 최상품으로, 부재료들도 직접 다듬은 좋은 재료를 사용해 내놓는다면 반드시 고객들이 알아줄 거라 믿었다.

배정선 대표

배대표가 꿈꾸는 식당으로 맞춤한 곳이 바로 이곳 항남동 거구장 건물이었다. 일제시대 적산가옥인 이 건물은 전통한옥인 황토벽과 일본식의 다다미방, 삼각 지붕이 그대로 남아 있는 튼튼하고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더구나 당시 항남동은 군청과 관공서들이 모여 있는 통영의 중심가였다.

“옛날에 유명한 ‘동락식당’이었던 건물이에요. 한 집을 두 집으로 나눠서 장사를 하다가 다시 합쳐지곤 했는데, 제가 인수할 때는 한 집이었고, 일식집을 하고 있었죠. 저도 도남동에서 남 눈에 빠지지 않는 기와집에 살았었는데, 이 집은 정말 좋더라고요.”

1987년, 조리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배정선 대표는 이 집을 임대해 ‘거구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처음 시작하고 2년은 힘들었어요. 처음에 갈비 1인분 3000원으로 시작했는데, 비싸다고 외면하는 손님들이 많았어요.”

나라가 가난하던 때, 고급식당, 비싼 식당인 거구장에는 웬만한 서민들이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귀한 손님을 대접하고 싶을 때, 하나둘씩 입소문으로 늘기 시작한 손님은 20년 동안 불황을 모를 만큼 모여들었다. 생활수준이 높아져 접대문화가 발달한 동안 거구장은 통영을 대표하는 식당이 됐다.

“3천원짜리 갈비로 70만원 매상을 올리는 날도 있었으니까 참 장사가 잘됐죠. 사실 IMF도 모르고 지나갔어요.”

최고로 직원이 많을 때는 11명이 숙식을 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놋으로 된 불판을 사용했는데, 불판 불리는 양잿물을 안 쓰고 불판을 닦다보니 어떤 날은 새벽 5시까지 불판을 닦기도 했다. 불판 닦던 직원 아이가 얼마나 고됐던지 몰래 불판을 버리는 일도 있었다.

건물을 인수한 건 8년쯤 지났을 때였다. 주인이 부동산에 건물을 내놨다는 말을 듣고, 무리해서 샀다. 당시 항남동 땅값은 통영 최고였지만, 배대표는 이 건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근대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구장 2층 

“지금도 저는 이 건물이 좋아요. 2003년 매미 태풍 때 가게가 몽땅 잠겨 버렸어요. 할수없이 벽을 뚫어서 수리를 하게 됐는데, 벽 안에 황토하고 볏짚이 있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겨울에도 따뜻했던 거예요.”

올해 경상남도에서는 근대문화유산을 지정하기 위해 통영시 전수조사를 벌였다. 일제시대에 지어졌으면서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건물을 찾아다니는 사학자들이 거구장을 놓칠 리 없었다.

“역사를 연구하는 교수들, 경상남도 공무원들이 수없이 찾아왔어요. 건축공부하는 학생들도 와서 건물을 둘러보고 가곤 했지요.”

담쟁이덩굴이 감싸안고 있는 거구장 건물은 안목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역사가 있을 법한 외관을 하고 있다. 학자들은 2층의 서까래와 나무 골격, 다다미 형식의 방을 찬찬히 살펴보며 사진을 찍어 갔다.

거구장의 장사는 예전 같지 않다. 항남동 쇠락의 역사와 함께 상권이 기운 탓이다.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되면서 군청과 법원이 빠져나가면서 시작된 항남동의 몰락은 2000년대 들어와 무전동과 죽림이 개발되면서 더욱 심화됐고, 최근 김영란법과 조선업 몰락에 따른 불경기로 더 위축됐다.

“작년부터 2년 사이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모두가 어려운 때라, 작년 6월에 내부수리를 한 뒤에는 점심특선을 시작했어요.”

적은 마진으로 하는 점심특선이지만, 상품의 질은 낮출 수 없는 자존심 때문에 노동이 고되어졌다. 다리까지 아프자 슬그머니 쉬고 싶은 마음이 들던 차에, 백년가게 추천을 받게 됐다.

“그동안의 노력을 알아준다는 생각에 참 감사했어요. 돈을 크게 벌지는 못하더라도 ‘조카들에게 넘겨줄 수 있는 백년가게를 만들어보자, 자부심을 가질 만한 가게를 만들자’ 하는 다짐도 새로 하게 됐지요.”

실질적인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백년가게 간판은 진짜 백년을 이어갈 꿈을 꾸게 만들었다.

도라지 한 뿌리, 생강 하나, 마늘 한 톨도 직접 까서 요리를 해온 처음의 고집대로, 배정선 대표는 오늘도 최상의 것으로 골라온 식재료 앞에 선다.

재료에서부터 정성을 다하는 배정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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