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생활을 말한다

김우두이 할머니.

나가 우리 동네서 나이가 젤루 많다. 구십너이.

젊어서는 곱다캤지. 늙으니까 사램이 모자래진다.

그래도 안즉까지 병원에는 잘 안 댕기구마는. 건강한 펜이지.

올부터서는 귀가 쪼끔 먹어지는 것 같고, 감기나 한본 오믄, 보건진료소에서 약 받아먹으믄 된다. 보건진료소가 한달에 한번 섬에 들오니까.

진두(한산도)에는 2달 반이나 3달 되면 파마하러 가고, 내~ 집에서만 산다. 일부러 좀 먼 데다 깨, 파 이런 걸 심어놓고 운동삼아 올라다니며 농시 짓고 그란다.

내 바로 밑이가 이간데, 87살이다. 한참 에린데, 그걸 친구 삼아 같이 댕긴다. 91살 동상이 요양원을 가는 바람에 그게 친구고만.

원래 고향은 한산도 봉암이다. 딸 다섯에 나는 셋째. 아부이가 이 마을(죽도)이 좋다꼬, 부자 섬이라고 이리로 보냈지. 작은언니는 한 마을 이씨 집에 보내고 나는 정씨 집에 보냈지.

열아홉 살에 왔으니께 나는 나아가 많아가 시집왔다.

첫날밤에 방안에서 신랑각시가 몰래 담배를 피왔다. 옐일곱에 동네 딸아들이 모여가 장난으로 담배 잎사귀를 몰아갖고 피게 된 기, 고마 취미가 들렸는데, 신랑이 피라카데. 어른들 모르게 살짝 핐다. 아들 하나, 딸 서이를 낳았지.

그때는 저 테두리까정 다 사램이 살았다. 그때덜은 고기도 많이 나고 돈도 많이 벌이고, 마을이 참 깨끗하고 좋았다. 지끔은 사램이 있나? 전부 다 객지 나가서 읎지.

나부텀도 객지 살다 왔다. 섬에서 13~4년 살다가, 아아들 델꼬 부산 가서 한 30년 살았다.

아아들 다 여의고 영감이 몸이 안 좋았는데, 고향 가고 싶다카더라고. 나가 60이고, 영감이 59살 돼서 다시 고향에 왔다.

공기 맑은데 사니까는 몸이 좋아져가, 영감은 15~6년 살다가 99년도에 돌아갔다. 금시 20년이 됐네.

영감 가기 전에 아들이 쉰둘에 교통사고로 그만 가삤다. 살았시면 칠십너이가 될낀데, 아들 딱 가고 나서 고마, 담배를 품고 살았다.

그러고 나서 메느리가 욕보지. 손주 서이 키운다꼬. 아들만 서인데, 메느리가 착해가 잘 키운다.

어느 날 메느리네 집에 갔더니 손주가 상을 닦고 그래. 나가 놀래서 “야야, 니 뭐하노? 뭐하는 짓고?” 하고 손을 잡으니까, 메느리가 “요새는 다 합니다.” 그래. 오데서 이런 일이 있나 싶더니만, 요새는 다 그런갑더라.

전에 테레비서 보니까, 딸아가 침대 누웠다가 “자기야, 나 물 한 잔만.” 그라니까 신랭이 갖다 주는 기라. 나가 깜짝 놀라서 “우째 이런 일이 있노?” 그랬지.

누가 그런 세상을 보고 살았나. 우리는 남자가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 하는 걸 못 보고 살았다. 다들 그렇게 살았지. 남자 세상 아니었나. 여자들이 일로 많이 했다. 나무도 내가 패고 그랬지.

딸들이 모두 울산 사는데, 즈그랑 같이 살자칸다. 그치만 아파트 가믄 담배를 맘대로 필 수 있겠나? 여서 흙내도 맡고 밥해 묵고 담배 한 대 피고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라믄 시상 부러울 게 읎지.

가끔 마을회관에서 점심 해주믄 묵고, 친척 손지들이 고기 갖다 주면 묵고 그란다.

섬에서는 이장이 욕보구만. 할매들 델꼬 산다꼬. 전에보다 이장이 참 일이 많아. 세상이 달라진께 별기 다 이장이 할 일이라.

내가 밥을 못 해먹게 되믄 딸들이 델꼬 갈끼지만, 그때꺼정은 섬에 살고 싶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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