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동 지향공방 백혜선·허윤정 씨

백혜선(왼쪽), 허윤정 공방지기

서호시장 안쪽, 도르가관광호스텔 옆에 조그맣고 예쁜 공방이 하나 있다. 이름부터 향기가 날 것 같은 지향공방.

햇살이 비쳐드는 공방 안에는 브로치, 손거울, 컵, 보석함 등 예쁘고 아기자기한 나전칠기 소품이 가득하다. 모두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이라, 각각이 세상에서 하나뿐이다. 작품마다 고전적인 나전칠기와는 확실히 다른, 현대적인 감각이 톡톡 튄다.

커피를 마실 만한 작은 테이블 하나 있는 공간, 서너 명이 앉을 만한 작업공간, 작업 중인 작품을 말리는 건조장 하나가 있는 작은 공방. 이곳에서 통영시나전칠기교실 2기 수료생인 백혜선(49), 허윤정(48) 씨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작업을 한다.

나전칠기 체험에 쓰는 거울에 옻칠하고 있는 혜선 씨.

나전칠기를 배운 지 2년쯤 됐을 때 작업공간이 필요해 공방을 열게 됐는데,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공모전이나 전시회에 낼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주문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요. 때로는 관광객이 와서 체험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작업만 했는데, 지인들이 물건을 주문해 만들어주기도 하고, 팔기도 하다 보니 판매장을 겸하게 됐다. 지금은 제법 소문이 나, 일부러 지향공방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다.

“사 가셨던 분들이 선물한다고 다시 사 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어느 날 와서 찾으시고 연락 주시는 분들이 늘다보니 이 공간을 지키고 있게 됐어요.”

바깥에서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딱히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닌데, 지향공방에는 관심이 있어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꽤 된다. 특별한 마니아층이 있기 때문이다.

옻칠 제품은 알면알수록 마니아가 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처음에는 육안으로 화학칠 제품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머뭇거리게 되지만, 천년을 가는 옻의 신비와 수공의 가치를 알게 되면 가격과 상관없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갖고 싶게 하는 매력이다.

나전이 화려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윤정 씨.

 

가죽으로 만든 1500년 전 백제의 갑옷이나 나무로 만든 700년 전 팔만대장경이 지금까지 깨끗이 보존된 것이 옻칠 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방수, 방부, 방충 효과가 뛰어난 천연옻칠 제품을 소장하고 싶어 한다.

옻나무에서 추출해 내는 양이 워낙 적어, 도료 자체가 비쌀 수밖에 없는 데다 사포질하고 옻칠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해야 하는 제작과정도 만만치 않아,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한 번에 많이 만들거나 공정을 줄이면 가격대를 낮출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마음에 안 차서 팔 수가 없어요. 저희 마음에 들어야 손님들도 만족을 하시니까요. 내가 만든 아이가 그분에게 평생 그 한 컵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다 보니 시간이 자꾸 더 들게 돼요.”

공방지기들은 상품을 말할 때 ‘아이’라고 말한다. 작품이 완성되는 2달여 동안 계속 매만지고 쓸고 닦다 보니 자식 같은 느낌이 든단다.

“판매를 할 때도 ‘시집보낸다’고 해요. ‘좋은 데 시집가라’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요. 어떤 때는 안 보내고 그냥 데리고 있고 싶을 때도 있어요.”

나무, 나전, 옻, 모두가 자연에서 온 소재들이라 만지는 마음도 따뜻해지는 모양이다. ‘보낸다, 데리고 있는다’ 하는 표현이 다정하다. 제품을 만들어 파는 수공업자가 아니라, 자식을 키워 출가시키는 엄마의 마음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

천년을 가는 옻칠이지만 불과 물에 항상 노출되는 숟가락이나 주걱은 사용할수록 칠이 벗겨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손님이나 주인이나, 물건 이상의 의미를 두는 이곳에선 도료 값 1만원에 새로 옻칠을 입히는 AS를 해준다.

“벗겨지면 또 칠하고, 벗겨지면 또 칠해서 평생 쓰시라고 말해요.”

차라리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때도 있으련만, 공방을 찾는 손님들도, 주인장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연 있는 아이(?)는 더 복잡한 과정으로 치료(?)해 곁에 두려 한다.  

이런 따뜻함, 장인정신, 탐미적인 태도, 예술성…, 공방은 이들에게도 크나큰 선물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혜선 씨와 아이들만 바라보던 윤정 씨의 삶은 나전칠기를 만나 완전히 달라졌다.
공간 유지비와 재료비를 제하면 약간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이지만, 더 수입을 올리기 위해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공방을 운영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만들고, 정말 원하는 분이 잘 아껴가면서 쓸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들은 어느새 통영문화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예술가가 되어 있었다.

서호아파트 상가에 있는 지향공방.

 

 

 

 

저작권자 © 통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