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자 호두마을 부녀회장

한산도와 비진도 내항마을 사이에 작은 섬 용호도가 있다. 용의 머리를 닮은 바위가 있고, 나무보다 풀이 많아 용초도라 불렸던 것을, 섬 안의 두 부락인 용초마을과 호두마을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용호도’라고 부르게 됐다.

이름에서부터 용이 연상되어서일까. 지도에서 섬을 보면, 머리를 바닥에 내린 용이 한가로운 걸음으로 거제를 향해 걸어가는 듯하다.

포로수용소로 유명한 용초마을이 큰 마을, 작은 마을이 호두마을이다.

“옛날에는 우리 마을이 용호도에서 제일 큰 부락이었어요. 나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양부락에 학생들이 300명씩 돼서 북적북적했지요. 공부 때문에 떠나고, 일한다고 떠나고 해서 지금은 마을 전체가 45가구만 남았어요.”

호두마을 한가운데서 마을에 하나뿐인 식당 ‘섬 안에 미자집’을 운영하는 박미자(65) 씨의 말이다. 그는 ‘김치 하나를 담가도 내 이름을 걸고 성심성의껏 담겠다, 파를 하나 무쳐도 속임수 안 하고 하겠다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간판을 내걸었다.

“이 집이 제가 태어난 집입니다. 원래는 매미 태풍 오기 전에 집을 밀어서 터만 남아 있었는데, 제가 장사를 한다고 하니까 오빠가 바로 동사무소 가서 명의이전을 해주데예. 벌어먹고 살라고. 그때 좀더 배짱이 있었으면 빚을 내서라도 제대로 짓는 건데, 돈이 없어가 조립식으로 지었지요.”

그때가 10년 전이다. ‘섬 안에 미자집’은 식당이면서 매점이다. 민박도 한다.

“작은 마을이라, 때때로 공사하는 일꾼들이 들어오면 밥 먹을 데가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 집에서 밥을 했는데, 아예 간판을 걸게 된 거지요.”

미자집 요리의 핵심은 엄마의 밥상이다. 시내에서처럼 음식을 만들어놓고 손님을 기다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주문을 받은 다음에 바로 음식을 해 준다. 섬에서 말린 미역, 톳, 금방 잡아올린 생선 등이 오르는 기본 밥상이 단돈 8천 원이다.

원래도 용호도가 관광객이 자주 찾는 섬은 아니었지만, 지난 1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더 어려움이 컸다. 그래도 고향이어서,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나갈 수 있었다.

“고향이 제일 좋습니다. 어려울 때 제일 생각나는 게 고향 아닙니까?”

호두에서 태어난 미자 씨는 바로 옆 섬인 ‘죽도’로 시집을 갔다.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병원 가까운 곳에서 살겠다고 거제로 이사를 했다.

“생빚을 내서 갔는데 다 털어먹었어요. 빈털터리가 돼서 갈 데가 없어지니까, 그렇게 고향 생각이 나데요.”

부모님이 마음아파할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고향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돌아온 것이 벌써 40년 전이다. 화장실도 없는 집 방 한 칸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지만, 고향이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오도갈 데가 없어 친정에 왔는데, 식구들이랑 마을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지요. 세월이 흐르다보니 배도 사게 되고 가게도 시작하고 이만치 일어났네요.”

남편 정진훈 이장(왼쪽)과 함께

지금 미자 씨는 호두마을 부녀회장이다. 남편 정진훈 씨는 작년부터 이장을 맡고 있다.

회원이 14명밖에 되지 않는 부녀회지만, 호두마을 부녀회는 마을 화장실을 청소하고 꽃밭을 가꾸면서 예쁜 호두마을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대부분 60대여서, 섬에서는 한창 일할 사람들이다.

“마을 끝에 가설극장 하던 자리가 그냥 버려져 있었어요. 우리는 나라 땅인 줄 알고 손도 안 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마을 땅이라. 그래서 우리 부녀회에서 꽃밭을 만들겠다고 했지요.”

미자 씨는 부녀회장 6개월치 활동비 25만원과 마을 공동화장실 청소비로 번 부녀회비 30만원을 보태 55만원으로 꽃밭 조성을 하겠다고 나섰다.

“거기가 땅이 300평이에요. 55만원은 포크레인 인건비밖에 안 되데요.”

장비가 동원되어야 하는 큰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새마을 지도자 박명줄 씨가 70만원을 내놓고, 부녀회 회원들이 100만원을 모았다. 사업계획서가 통과돼 통영시에서 꽃밭지원금 300만원도 받았다.

“지금도 만들고 있습니다. 면사무소에서 꽃 나오면 갖다 심고, 또 조금 어디서 묘목을 얻으면 다시 갖다 심고….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그냥 버려뒀던 땅이 이렇게 예쁘게 바뀌었는데.”

요즘 호두마을은 용호도 포로수용소 정비사업이 마을에 활력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포로수용소가 새롭게 정비되고 용호도를 찾는 사람이 늘면, 마을 부녀회도 무언가 마을을 위해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오늘 심어놓은 꽃송이 하나도 호두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예쁜 미소 하나를 선물할 것이다.

부녀회가 조성하고 있는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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