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현 리케의 디자인 랩 대표

‘리케-본질적인 행복을 찾아서’

혼자 무거운 세상에 갇혀 있는 것 같던 시절, 황서현(39) 씨는 한 줄기 빛 같은 단어를 발견했다.

“리케….”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듯한 말이었다.

“북유럽 단어라고 하더라고요. ‘본질적인 행복을 찾아서’라는 뜻이 너무 좋아서 ‘리케’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창업을 하면서도 리케라는 이름을 썼죠.”

‘리케의 디자인 랩’은 1년 전 창업해 도남동 리스타트 플랫폼에 입주해 있는 굿즈 매장 이름이다. 매장 입구에는 서현 씨를 꼭 닮은 소녀 ‘리케’가 꿈꾸는 얼굴로 서 있다.

젊은 창업자 황서현 씨는 이곳에서 통영을 상징하는 굿즈 제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판매한다. 안경닦이, 마우스패드, 냉장고 자석 등 작은 소품들에 황서현 씨가 그린 통영이 담겨 있다.

“엽서는 100장씩 제작하고 있고, 티셔츠는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제작합니다. 아무래도 모든 제품을 손으로 만들다보니 사이즈별로 구비해놓고 있기는 어려워서요.”

통영을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서현 씨는 강구안과 통영대교, 통영의 섬들을 그린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색이 젊은 관광객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하지만 서현 씨는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어린 시절, 그 흔한 미술학원도 한번 다닌 적이 없다.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할 때 공부가 더 중요했던 부모님은 속셈학원을 보내셨다.

결국 황서현 씨는 환경공학과를 졸업해서 3년 동안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근무했다.

“나서부터 죽 부산에서 살다가 통영 온 지 11년 됐어요. 통영에 와서는 육아에 집중하는 전업주부로 살았지요.”

익숙하게 살아왔던 것을 모두 접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참 가혹한 일이다. 부산에서 나서 부산밖에 몰랐던 서현 씨는 통영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아내와 엄마라는 낯선 역할을 해야 했다.

“딸아이가 잠을 안 잤어요. 밤낮이 바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잠을 자지 않으니 정말 힘들었지요.”

황서현 씨가 만든 리케와 함께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었던 그 시기, 그러나 서현 씨는 그때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책과 글쓰기를 통해 그동안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또 다른 서현, ‘리케’를 조우하게 됐으니 말이다.

서현 씨를 독서의 세계로 이끈 건 육아서적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 사랑스럽고도 까다로운 아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서현 씨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마다 보석 같은 길을 숨기고 있는 책들이 점점 인문학과 철학의 세계로 서현 씨를 끌었다.

서현 씨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육아의 어려움과 사소한 생활을 일기처럼 쓰기 시작한 블로그는 어느새 팔로워가 1800여 명에 이르렀다.

“사실은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었어요. 병원에 가느니 책을 읽어보자 하는 마음이었지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없어질 것 같았어요.”

책은 서현 씨의 빈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 다음에 서현 씨가 한 일은 그동안 쓴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한 것이다. 책 뒷부분에 있는 ‘언제든 투고를 기다린다.’는 안내 문구가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냉담했지요. 한 100군데쯤 투고를 했는데, 대부분은 답이 없었어요. 몇 군데서 ‘이런 콘셉트는 잘 팔리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내주기도 했어요. 때로는 실망이 돼서 이제 그만둬야 하나 하고 있을 때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100번의 도전 끝에 서현 씨는 드디어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많지는 않지만 계약금도 받고 인세 계약도 했다. ‘집에서 돈 버는 법’이라는 실용서다.

리스타트 플랫폼에 입주하게 된 건 글 쓸 작업실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4층의 창업공간은 이미 입주자 선정이 끝났고, 남은 곳은 매장을 겸해야 하는 2층 공간이었다.

서현 씨는 그동안 소비자로서 관심을 갖고 있던 굿즈가 통영에 없다는 점에 착안해 굿즈 매장을 기획했다.

“일본에 가보면 아기자기한 굿즈가 많이 있더라고요.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담고 싶은 사람들이 적은 비용으로 찾을 굿즈 매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 제품 제작, 판매 모두가 처음 하는 일이지만, 서현 씨는 걸음을 떼면서 길을 만들어갔다. 서현 씨의 그림을 보고 디자인을 의뢰해 오는 사람, 함께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의해오는 사람, 우리 마을 캐릭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오는 사람들의 한걸음들이 모여 리케의 디자인랩은 조금씩 자리를 넓혔다.

“프로젝트를 하나씩 넘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작년에는 일을 많이 맡게 돼 과로한 탓인지, 대상포진에도 걸렸어요. 하지만 하나씩 산을 넘으며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서현 씨는 통영의 청년들과 ‘리얼라이즈협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다. 명정동 도시재생의 여러 일을 함께 하고 있지만, ‘명정동 이야기’를 신문에 담는 일은 오롯이 서현 씨 몫이다. 이것도 처음 하는 일이지만, 100번을 도전해 결국 길을 뚫는 서현 씨는 이번에도 멋지게 새 길을 열 것이다.

지난해 진행된 ‘통영시 문화도시 브랜드 공모전’ 이미지 공모전 대상 작품에 선정된 황서현 씨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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