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퍼 김흥국

우도에서 태어나서 30년째 욕지도에 들어와 살고 있는 김흥국(61) 작가의 전시회가 통영리스타트플랫폼에서 진행중이다. 전시 주제는 “something”. 우리말 ‘섬’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something) 느낌을 섞은 언어유희다.

이번 전시회에서 김흥국 작가는 욕지도가 낳은 문장가 김성우 선생의 저서 ‘돌아가는 배’를 다양한 캘리그래피 작품으로 만들었다.

김성우 선생은 작품집에 “글보다 글씨가 아름다우니 글이 시샘하겠습니다./글도 섬에서 자라고 글씨도 섬에서 자라, /어깨동무하여 함께 부르는 섬의 /노래가 즐겁습니다. /‘돌아가는 배’의 호강입니다. /글을 빛내준 글씨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썼다.

김흥국 작가가 태어난 우도는 욕지면 연화리에 속한 작은 섬이다. 우리말로 ‘소섬’이다.

섬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뭍으로 나와 중학교에 다녀야 한다. 김흥국 작가는 외가가 있던 삼천포로 나가 중학교를 다녔다.

김흥국 작가의 전시회 소감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독립해서 진주에서 학교 다니고, 대학은 부산에서 다녔다. 어찌 보면 섬의 아이들이 전형적으로 겪는 성장 패턴이다.

다시 섬으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작가가 되고 나서다. 부산 동의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김흥국 작가는 내면에서 들리는 고향의 소리에 끌려 섬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오면 고향의 바다가 너울지며 캔버스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서른살, 1991년이었다.

욕지에 들어와 터전을 잡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부산에서 만난 착한 아내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함께 섬 생활을 시작했다. 살림집 근처에 미술학원도 냈다.

“당시에는 욕지에 아이들이 많았어요. 우리 미술학원만 해도 학생들이 120명 정도 됐었죠. 나고자란 우도는 아니지만, 욕지에 와보니 참 매력있는 섬인데다 젊은 사람이 할 일이 많더라고요.”

우도의 행정적인 일은 면소재지가 있는 욕지에서 해야 하니, 욕지도는 우도의 큰집쯤 되는 셈이다.

동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를 좋아하는데, 저아는 우째 다시 섬으로 왔는고?” 하는 눈으로 보다가, 섬의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김흥국 작가를 찾았다. 김작가는 동네 어르신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섬에 스며들었다.

섬에 살면서 더 섬을 사랑하게 된 그는 어르신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섬역사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구술정리와 사진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의도하지 않은 역사 정리였지만, 10년이 지나니 꽤 많은 자료가 모였다.

“처음 섬에 들어왔을 때가 욕지 개척 100주년이 지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당시 어른들이 ‘욕지 100년사’를 내고 싶어하셨는데, 너무 막연하고 엄두가 안 나 손을 못 댔다고 하시더라고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애정 있는 눈으로 섬을 바라보다보니 모든 게 생생한 섬의 역사였다.

“욕지도에 있는 패총의 탄소연대기는 6700년 전입니다. 구석기와 신석기 중간 시대 때부터 욕지에 사람이 살았다는 말이지요. 왜가 출현하여 조선이 공도정책을 폈으니, 그때까지 욕지도에 사람이 살았습니다.”

욕지 개척사는 우리나라 섬 개척 역사와 시대를 같이 한다. 조선후기가 되면서 섬에 들어가 살게 해달라는 청원이 시작되고, 욕지 개척 5인이 입도하게 된 것이 욕지섬의 근현대사다.

2003년, 김흥국 작가는 어르신들에게 “욕지 역사를 기록한 책을 만듭시다.” 하고 말했다.

“우리가 10여 년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이다.”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시에서 해줘야 하는 거 아이가?”,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이 해야 하는 거 아이가?” 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일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어르신들이 욕지의 산 역사고, 산 증인입니다.”

김흥국 작가는 욕지사편찬추진위원회를 꾸려야 하는 당위성을 면민들 앞에서 설파했다.

“해 보자. 우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못했는데, 네가 용기백배해서 해본다 하니까 한번 해보자.”

그는 자원하여 욕지의 사관이 되었다.

“그동안 자료를 꽤 많이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5년 걸려서 2008년에 면지를 만들어 냈지요.”

1300페이지에 달하는 세상에 다시없는 면지가 탄생했다.

이후로도 그는 마을협동조합을 만들며 섬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이번 전시회를 하면서 그는 “그림을 그리려 섬으로 갔는데, 그림은 사라지고 글씨가 남았다. 글씨가 섬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온통 섬뿐이다.”라며 섬사랑을 표현했다.

섬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섬의 역사를 기록하고, 섬을 글씨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김성우 선생(오른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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