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피랑 음악상자 임재민

윤이상 기념관 입구 옆에 음악을 듣는 공중전화가 새로 생겼다. 전화카드를 넣는 입구에 종이악보를 밀어넣으면서 손잡이를 돌리면 음악이 나오는 특별한 공중전화다. 전화기 옆에는 편지, 자장노래, 꼬마병정 같은 윤이상의 동요와 통영초, 진남초, 광도초 등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통영 학교들의 교가가 종이악보로 준비돼 있다.

이 전화기는 명정동에서 오르골 공방을 하고 있는 임재민(29) 씨가 중고공중전화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공중전화 속에는 20노트(Note)짜리 오르골 리더기를 넣었고요,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을 오르골에 맞게 편곡해서 종이악보로 만들었습니다.”

‘오르골’ 하면 떠올리는 실린더식 오르골은 음악에 맞게 제작된 실린더가 돌아가며 소리를 내는 구조다. 원통의 길이와 쇠빗의 빗살 갯수가 많을수록 더 다양하고 풍성한 소리를 낸다.

그러나 실린더식 오르골은 한 곡의 특정부분만 반복되는 단점이 있다. 또한 금형으로 실린더를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제작에 접근할 수는 없다.

윤이상 기념관 입구 옆에 위치한 공중전화

임재민 씨의 공방에서는 다양한 실린더식 오르골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천공리더식 오르골’이라고 불리는 종이악보 오르골을 만든다.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고, 직접 작곡을 해서 종이 악보에 옮길 수도 있다. 아무리 긴 음악도 종이를 붙이기만 하면 모두 연주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오르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동 공방에 오면 악보를 읽을 수 있는 리더기 조립과 종이악보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다.

“체험하는 데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립니다. 자기가 만든 음악이 오르골 음악으로 표현되니까 아주 즐거워하십니다.”

오르골 소리는 엉성한 음악도 신비로운 음색으로 바꿔준다. 음악의 도시 통영에 잘 어울리는 공방이다.

“통영과 오르골!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 때문에 재민 씨는 2년 전 통영에 오게 됐다. 오르골 음악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구상하던 중에 지인을 통해 통영시에서 ‘청년창업드림존사업’으로 창업을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민 씨는 오르골 공방을 내겠다는 꿈을 안고 통영시로 이사했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도시로 아예 삶의 터전을 옮기겠다는 결심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문화예술의 맥이 흐르고 있고, 윤이상 선생이 있는 음악의 도시 통영이 아닌가.

통영시의 창업지원으로 재민 씨는 서피랑 은행나무길 중간쯤에 있는 ‘서피랑 음악상자’를 창업했다. 충렬여중에는 자유학기제 수업을 나가고 있고 다른 학교에는 체험활동 수업을 한다.

종이악보를 만들 때 펀치를 뚫는 힘이나 조정이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 체험을 많이 한다.

“보통 오르골을 장난감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음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숙련을 거쳐야 연주할 수 있는 기타나 피아노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이지요.”

재민 씨는 처음 오르골을 만났을 때 장난감이나 장식품 이상의 ‘음악’을 보았다.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을 거쳐야 하는 기타나 피아노와 달리,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내고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통영과 딱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한 재민 씨의 생각은 공방을 열자마자 증명됐다. 통영의 로컬출판사인 남해의 봄날에서 2019년 11월 윤이상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모아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을 출판하면서 윤이상의 음악이 든 오르골을 같이 판매하자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제작비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해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남해의 봄날과 손을 잡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윤이상의 음악을 상자 속에 담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다.

오르골의 매력에 빠지다보면 비슷한 원리로 소리를 내는 배럴오르간을 만나게 된다. 오르골처럼 손잡이를 돌려서 음악을 연주하는데,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소리가 난다.

“이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고 따뜻한 봄이 오면, 공방은 주말체험 식으로 운영하고 평일에는 음악을 들고 밖으로 나가 시민과 관광객을 만나고 싶습니다.”

음악상자에 행복을 담아 전하는 재민 씨는 좋은 날, 시민들 곁에 다양한 ‘음악’으로 다가갈 날을 기다린다.

손잡이를 돌려 연주하는 배럴오르간
종이악보와 악보리더기
오르골을 만들 수 있는 키트
옻칠로 장식한 오르골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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