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한창인 하늘
퍼렇게 쏟아내는 풋내를 휘젓고 노는
나비 한 마리
소음이 사라진 뒤에 펼치기 시작한
비벼내는 여린 날개가 가상하다

너는 꼭 철없는 생각시면서
의심하는 이도 없는 곳에서 펄펄 나는
한 마리 자유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아
검붉은 흙에서 나오는 연두로부터
보아줄 너를 불렀지

바다 건너에는 늙은 곁눈이
지고 마른 것도 잊고 청순을 탐하여
다급한 밤낮을 보낸다는데
이대로 곱게 보아주던지
정절(貞節)한 꽃대 크는 시간에는
등을 돌려주면 좋을텐데

굉음 속으로 사라진 글도 있었고
푸른 핏물 받던 말도 있었지만
그때 흩어진 달그림자 조각까지
깊은 골짜기에 묻어버렸으니
호접몽 이야기 몇 통은 적어 보내야지

선단을 지나온 어여쁜 나비여
따뜻한 산란장에 들어 온 듯
느긋한 내 심장소리 들리고
들은 대로 필 수 있는 시간을 얻어 주면
나는 아마도 한동안 꿈을 꾸며 놀 것 같아


*호접란 : 아름답지만 선이 굵고 강인한 이 꽃을 어떤 이는 여성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비 두 마리가 아름다운 날개를 맞대고 있는 듯 한 이 꽃은 그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팔레놉시스(Phalaenopsis) 라고 통칭하며, 꽃의 개화기간이 길어 애용하는 사람이 급속도로 늘었다. 수많은 종류 중에 청풍의 별칭을 가진 꽃을 보고 글을 적어 보았다.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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