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밤을 보내고 여기 왔는지
거친 비가 오는 소식을 듣고도
넘어오던 언덕을
당신이 서 있던 언덕을
보고 싶던 그날만큼
정명(正名)되지 못한 아픔
당신이 만든 심장에서 시작하였지
이만 용서할까
수없이 물어보던 자리에
누가 대신 앉았다가 돌아갔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흐느끼던 소리에도
검고 흰 싹이 돋는다
잎맥에서 벌어지는 전투적인 생존
그럴수록 새벽마다 걸러둔 긴 선몽에도
꽃은 멍을 지우지 못한 채
비 그친 배경 뒤에서 기다리는
오래된 품
그만 간 듯하여도 얼굴을 덮지 말고
한 낮 덮쳐오는 태양처럼
미끌미끌한 그 길
빠르게 훑고 지날 조문길을 열어주며
당신도 긴 그림자 앞세우고
피다 지는 모든 것에
눈물 흘려 주어야지
반쯤은 감은 눈을 마저 덮어주고
오늘까지는 이겼으니 푹 쉬라는
느긋한 편지를 읽는
깊은 가을을 눈 앞에 두고
거룩히 순장되는 상상을 하는
당신은 그 꽃
*용담꽃 : 설사 꽃이 많이 달려 처지고 바람에도 약해 쉽게 쓰러지지만, 그 속에서 꽃이 많이 피기 때문에 자르면 안된다. 당신이 힘들 때도 나는 사랑합니다의 꽃말을 가진 용담꽃은 여름에 피는 야생화다. 여름의 감성을 끌어올리려다 보랏빛의 매력에 자칫 우울해진 시를 썼다.
정소란(시인)
통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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