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찬 날을 보내고도 눈부신 황국
이제야 피는 이유를 묻기도 전에
고개를 돌리는 저 오만!
저릿하게 뻗쳐오는 신경이
잘 접어 말려둔 기억에도 아파옵니다
여기가 퇴계(退溪)의 집인지
쓰러진 볕도 물리고 앉은 도연명(陶淵明)의 앞인지
문 밖에 심은 꽃을 보는 나도
흔들리는 시공에 있습니다
집 하나 지어서 국화 그려 걸던 인정은
명문(名文)도 버리고 달도 지우더니
탱자나무 울타리 너머로 가던 은일자(隱逸者)
돌아가던 모퉁이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절명하지 못한 꿈을 품고
모호한 말에도 흔들리는 절개
이 절개 그려주던 선비는 떠나고
남긴 자화상
잦은 바람에 흐려질 꽃색에
누군가는 눈물 나는 낙화에
달도 내려 품어 줄 신독한 시간
여기도 달이 돋아오는데
나는 누구와 만날 수 있을까요
볼 수 없는 경계 밖에 그가 있어도
함부로 가지 않겠지만
그 너머 국화 피고 달이 돋는 소리를 듣고도
다시 중용(中庸)을 읽으라는 말인지요
* 국화: 종류가 많은 여러 꽃들 중 하나인 국화는 시인묵객들로부터 가장많은 서정적 글을 쓰게 만들었을것이다. 국향은 제 계절이 아닐때라도 맡으면 그 순간 진한 가을을 미리 느낄수있다. 색에 따라 조금은 다른 꽃말을 가진 국화는 가히 선비의 풍류와 절개를 함께 가졌다 할 만하다.
정소란(시인)
통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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