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지키느라 10년, 이제는 일하고 싶다
공방 지키느라 10년, 이제는 일하고 싶다
  • 김선정 기자
  • 승인 2020.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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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소반장 추용호

1895년 갑오경장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통제영은 문을 닫았고, 양반들은 생명처럼 여기던 상투를 잘랐다.

12공방을 통해 조선의 수공업을 선도하던 통영은 걷잡을 수 없는 변혁의 물결 속에 들어갔다. 공방의 장인들은 통제영 밖으로 나가 각자의 공방을 차렸고, 토지개혁으로 땅을 빼앗긴 양반들은 집을 쪼개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하루아침에 반상의 구분이 없어졌다. 수예를 놓던 안방마님은 낯선 동네의 일감을 받아와 방안에서 비단옷을 지었고, 갓을 쓰던 양반님네는 방에 들어앉아 작은 가재도구를 만드는 소목일을 했다. 체면 때문에 상일은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식솔들을 굶길 수도 없기에 한 선택이었다. 방안에서 소품을 만드는 장인 중에 양반 출신이 많은 이유다.

“우리 아버님도 소목일을 배우셨어요. 윤이상 선생의 집안도 양반이었지만 소목을 하셨지요.”

추용호 소반장의 아버지 故추웅동 장인은 고모부(윤이상 선생의 부친)에게서 처음 소목 일을 배웠다.

“시대가 변한깨나…. 아버지는 협성학교를 3년 다니고 서당을 다니셨는데, 13살 때부터 서당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고모부 집과 또 다른 장인 집에서 기술을 배웠답니다. 소목뿐 아니라 발도 만드시고 가구도 만드셨는데 솜씨가 최고였지요.”

추용호 장인은 아버지에게서 소목 중 가장 조각미가 뛰어난 소반을 배웠다.

“통영소반은 무늬가 아름다운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로 만듭니다. 상판 바닥과 다리에 아름다운 문양을 섬세하게 조각하고 옻칠로 마감을 하지요. 한참 일에 몰두할 때는 정수리에서 손끝까지 한 줄기 기가 좍 통하면서 미세한 조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추용호 장인은 1982년 통영소반 국가기능보유자 후보로 선정됐다. 1996년에는 공보처에서 만든 홍보용 책자 ‘한국의 문화’와 서울시립대학교 교과서 및 교재에 실렸다.

2001년 경상남도지방무형문화재 소반장으로 지정됐고, 2014년 9월 국가무형문화재 소반장 보유자가 되었다.

“저는 경남문화재 시험을 본 적이 없어요. 국가문화재 시험에서 1등을 했는데도, 경남문화재로 내려버렸습니다. 2008년에도 1등을 했고, 2010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국가문화재는 다른 사람을 지정해 버렸습니다.”

추용호 소반장은 2013년, 네 번째 시험을 통과한 다음에야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것이 못내 섭섭하다.

“저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옛 공구를 이용해 전통제작기법으로 소반을 만듭니다. 톱물리개, 좁집이, 탕개톱, 내리거지톱, 혹대패, 귀돌이대패, 도랭이개탕, 뒷치기변탕, 밀도, 헤비칼, 쌍사밀이, 홀개 등 사용되는 연장만 해도 300여 개가 되지요.”

그가 갖고 있던 연장 중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2백년 넘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연장들은 지금 통영지원의 창고를 비롯해 4곳에 흩어져 잠자고 있다. 2016년, 통영시가 그의 공방을 강제 철거하면서 도구들을 몰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통영시는 공방 자리에 도로를 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집문제는 2010년부터 불거져 있었다. 이웃들이 보상을 받아 이사가는 것을 지켜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추용호 장인은 ‘보상금 몇 푼을 받고 이 집을 떠나는 게 옳은가? 떠날 수 있는가?’ 계속 생각했다.

120년이 넘은 그의 집은 구한말 장인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 아버지가 평생 일하셨던 곳, 그리고 현재 인간문화재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추용호 소반장은 집을 지키기로 했다. 지방정부를 상대로 법정소송을 불사해야 하는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2년여 재판 끝에 승소한 통영시는 2016년 철거를 강행했다.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법원 집행관들이 집 안에 있는 물품들을 들어냈다. 그러자 추용호 소반장은 집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가무형문화재 추용호 소반장 지키기 시민모임’이 만들어져 통영시를 규탄했고, 문화재청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추장인의 공방에 대한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해달라고 통영시에 공문을 보냈다.

“천막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 때 문화재청장님이 이불을 다 사오셨습니다. 그 이불을 덮고 시위를 했습니다.”

2017년 7월 25일,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추용호 통영 소반장’ 건물(공방)을 문화재로 직권 등록해 버렸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때 민간 공방으로 원형이 남아 있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100년 넘도록 대를 이어 통영 소반의 맥을 이어온 공간이라는 점을 들어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공방을 지킬 수 있게 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인의 도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공방으로 쓰던 한쪽 건물이 헐려, 둘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도구는 썩는다. 집을 비웠을 때 도구를 가져갔기 때문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현재 상태는 어떤지를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일을 하지 못한 지가 벌써 10년입니다. 비게 된 도천동 사무소를 전수관으로 만들겠다더니 그것도 소식이 없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창고라도 마련해서 빼앗긴 공구들이라도 찾아다놨으면 좋겠습니다.”

통영시는 현재 공방 복원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불과 며칠 전인 11월 5일 실태조사를 마쳤다. 기다림에 속타는 추용호 장인은 매일 3km 이상을 걷고 근력운동을 하며 다시 목재 앞에 설 날을 준비하고 있다.

추용호 장인은 도천동에 공방지도를 만드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추용호 장인은 도천동에 공방지도를 만드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