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밥 투쟁
흰밥 투쟁
  • 통영신문
  • 승인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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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우리집은 할아버님과 할머님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부모님과 우리형제 3남 1녀와 사촌 형제들 그리고 머슴과 일꾼들로서 15명 정도를 식수 인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막내이니 식탁에 앉은 사람 중에는 가장 어린 사람이며, 거의 말석이 나의 자리였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은 단독 겸상을 하였는데, 하얀 쌀밥에 간혹은 생선이 오르는 등 참으로 부러운 밥상이었다. 나의 밥그릇에는 늘 보리밥에 잡곡까지 섞은 밥과 부실한 반찬이었으나 투정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긴 장마의 보리 흉년 때 쾨쾨한 냄새까지 나는 쉰 보리밥 먹은 생각을 하면 보리 잡곡밥은 그래도 좋은 것이었다. 보리 잡곡밥도 없어서 고구마와 콩으로 만든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었다. 나에게는 또 다른 행운이 있었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밥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밥은 나의 차지가 되었다. 그 밥은 보들보들하여 씹지 않아도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는 거의 잡곡 보리밥을 먹었다.

결혼하고 아내는 가족들의 건강을 챙긴다는 이유로 콩을 섞은 현미밥을 늘 준비하였다. 수확기가 되면 9분도 현미를 부탁하고 매월 정미한 현미를 고향으로부터 가져 왔다. 노란 메주콩, 서리태 검정콩, 찹쌀, 율무, 팥 등 온갖 잡곡을 넣어서 밥을 하였다. 나도 툭툭한 현미 잡곡밥 보다는 하얀 쌀밥이 좋았지만 아내의 의견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밥투정은 들은 척하지 않는 아내의 주장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론적으로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나 역시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여 현미 잡곡밥이 우리집의 주식이 되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게 지금까지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4학년 손자 둘이 우리와 같이 지내고 있다. 아내의 현미 잡곡밥 사랑은 손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현미에다 온갖 잡곡을 넣은 밥이 건강에 좋다고 누누이 설명하면서 손자들이 먹도록 유도를 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 손자는 이해를 하고, 적응이 되어서인지 밥투정을 하지 않았지만 둘째 손자는 늘 밥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불만을 제기할 때마다 아내는 손자에게 당근책을 제시하면서 그 밥을 먹였다. 7살 유치원생 손자는 낮에 할머님이 주신다는 빵과 과일의 유혹으로 참으면서 그 밥을 먹었다. 그러나 오늘 결국 사건이 터졌다. 아침 밥상에 앉은 손자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왜 할머님은 흰밥을 주시지 않느냐는 불만을 터트렸다. 그리고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로 가서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서러움이 가득한 울음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난감하게 된 할머님은 흰밥을 일주일에 한번 해 주기로 약속하고는 흰밥 투쟁은 막을 내렸다.

우리집은 매주 수요일 아침에 보들보들한 흰밥을 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