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한산농협 조합장

최재형 한산농협 조합장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 조정안의 3차 결과를 듣고 마음이 편치 못해서 이른 새벽 책상에 앉았다.

밖을 내다보니 산 뒤 등성이에는 날이 밝아 오려는 연한 태양빛과 희미한 하얀색, 아직도 어둠이 섞인 색으로 혼합되어 있다.

건너 마을은 가로등 불빛이 일렬로 선연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집 한집 불이 켜지고 있다.

한산도에 태어난 것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임진란 전쟁의 승패를 바꾼 한산대첩의 승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독일이 30년 전쟁에 패배한 뒤 나라를 재건한 철혈수상 비스마르크라면 ‘지금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까’ 생각하는 것처럼 한산도에 닥친 위기, 농협의 어려움으로 고민될 때 충무공을 생각하며 ‘그분이라면 어떻게 할까’ 라고 떠올려 본다.

그러나 한산도에 태어난 것에 안타까움이 있다면 50년 동안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묶여 심한 제재 속에서 기울어져 가는 내 고향을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 무력함이다.

작년 2019년 9월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시작되기 5년 전부터 멧돼지 개체수를 줄여 달라고 면사무소와 동부한려해상국립공원 한산분소에 애원했다.

매년 2월말에 옥수수 종자를 심어 6월말에 수확하는 옥수수를 따기 2주전에 멧돼지가 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한해 농사가 허망하게 되었다는 조합원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분을 삼켜왔다.

1999년 고향에 내려와서 15년 동안 가두리양식을 했다. 이번 하이선 태풍으로 그물이 터져 마지막 남은 가두리 고기가 나가 버리고 참돔 20마리만 남았다. 4~5년을 넘겨 키운 고기가 눈앞에서 사라진 아픔은, 그 아픔은 참 컸다. 그래서 옥수수를 따기 몇주전 수확을 바라던 조합원의 기대가 멧돼지로 인해 물거품이 된 아픔은 이해되는 것 아닌가.

치사율 100%의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멧돼지로부터 시작해서 휴전선에 인접한 경기도, 강원도 지역의 양돈 농가의 돼지를 강제 살처분하는 큰 손해를 입혔다.

환경부는 전문가들이 멧돼지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거듭된 요청을 무시하고 ASF 열병이 터지고 나서야 관리 대책을 내놓는 늦어도 너무 늦은 늑장 대응의 모습을 보여줬다. 충고를 무시한 댓가는 올해 8월,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강원도 화천 인제 지역을 중심으로 재발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타고 설악산, 경북까지 전염시키면 농가의 손실은 또 반복 될 것이고 김포지역의 많은 곳에서는 아직도 입식조차 못하고 있다. 나아가 밀집사육 10곳에 통제 초소라는 것을 설치해서 농가를 옥죄려고 한다.

환경부가 하는 처사를 보면 언젠가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행정부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전문가들과 농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안이한 자세, 국민은 개·돼지라고 말했던 동부한려해상국립공원의 前 한산분소장의 갑질태도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담당하는 주무관청도 환경부다. 관광객이 한산도에 와서 봄쑥을 좀 캐는 것이 보이면 ‘벌금을 물리겠다’한다.

10년을 외지에서 있다가 농사를 짓기 위해 농지를 구입해 밭에 자란 나무를 베면 ‘법적조치 하겠다’고 하고 면사무소에서는 ‘신고기간 내에 농사짓는 것이 확인되어야 농지취득자격증명서와 농지원부를 발급할 수 있다’고 한다.

시청에서 한산도에 무얼하나 해주고 싶어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허락을 받지 못해 허사로 돌아간다.

그 시간이 50년을 넘어 침체와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시간까지 오게 됐다.

지난 23일 금요일 녹지과에서 구역 조정안 결과를 한번 더 바꿔보자고 급히 한산도로 내려왔다.

한 두지역의 해상을 양보하는 대신, 육지의 전·답은 풀어 보자는 제안이다.

한산도 전체를 위해서는 시청안대로 해야 하는데 관련된 섬마을의 주민들은 괴롭다. 마을 분들의 격앙된 반대를 듣고 있으니 환경부에서 이제까지 우리를 괴롭혀온 것들이 생각나서 힘들다. 몸이 떨린다.

물리적인 시간도 부족하다. 구역조정을 10년에 한번 하니 2021년 2월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코너에 몰아넣고 총량제 범위 내에서 답을 찾아오라는 식이다.

10년후. 2031년 2월이 되면 한산도에 얼마만큼의 발전이 제재 속에서 미뤄지고, 또 인구는 얼마나 남을까.

사람이 안들어 오고 고령화되니 농산물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한산농협은 살아남아 있을까.

우리 후손이 그때 당신들은 한산도를 위해 무엇을 했나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지...

지금은 환경부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상위법속에서 많은 지역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발전을 막아서라도 환경을 지키는 것이 의무였다고 말하겠지만, 주민과 같이 살고자 고민하지 않는다면 한산면, 산양읍 그리고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50년의 심한 제재로 소멸 위기에 막다른 이곳을 후손이 보게 된다면 언젠가는 국민이 환경부를 버릴지도 모른다.

국민의 절실한 목소리를 외면한 영원한 권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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