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란 국가무형문화재 제도에서 보유자를 이르는 말이다. 무형문화재에는 예능 부문과 기능 부문이 있는데, 각각 예능보유자, 기능보유자라고 일컫는다.

2020년 9월 기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은 모두 148종목, 여기에 보유자로 지정된 분은 모두 173명이다.

예향 통영은 서울 등 대도시를 제외하고 지정된 국가무형문화재가 가장 많은 도시다. 그러나 인구 1천만의 서울과 13만의 통영을 어떻게 같은 저울에 두고 잴까.

그런 의미에서 현재 9개 종목에 무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돌아가신 보유자를 합하면 모두 40분의 인간문화재가 있었던 통영은 그야말로 문화재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도는 1962년에 생겼다.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이 생기면서, ‘문화재 보호법’을 제정하고 중요무형문화재를 보호 대상으로 정했다.

통영에서는 나전장의 인간문화재로 김봉룡 선생이 1966년에 지정되고 승전무가 1968년에 지정됐다.

1999년은 무형문화재 제도가 개선된 해다. 이때 보유자의 수를 대폭 확대했는데, 통영에서는 두석장 김극천, 염장 조대용, 통영오광대 구영옥, 김옥연 선생 등이 보유자가 됐다.

2015년 다시 한번 문화재 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단체 종목의 무형문화재는 보유자를 인정하지 않게 됐다.


기능 보유자

갓일 정춘모

1991년 ‘입자장’으로 지정되었으며 전수교육조교와 이수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두석장 김극천

2000년에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아들이 이수자로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염장 조대용

2001년에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문화재청에서는 내년 중에 조교를 충원할 계획이다.

소반장 추용호

2014년에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10여 년째 공방 철거 문제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예능 보유자

남해안별신굿 정영만

1996년 악사(피리)로 예능보유자가 되었으며, 전수교육조교 충원이 논의되고 있다.

통영오광대 김홍종

2012년에 ‘바꾸, 문둥탈’로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승전무 한정자

4명의 원무, 12명의 협무가 같이하는 ‘북춤’을 되살려내 1996년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승전무 엄옥자

8명이 함께 추는 ‘칼춤’을 되살려내 1996년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인간문화재의 고향, 가신 분을 생각하다

첫 번째 기림제와 학술 세미나

통영인간문화재 기림제와 학술세미나가 지난달 30일에 열렸다. 통영인간문화재기림제추진위원회(위원장 서유승, 이하 추진위원회)가 주관한 기림제는 오전 11시 30분 통중 앞에 있는 봉평동 인간문화재 비림에서 열렸다.

서유승 추진위원장은 “1960년 예용해 선생이 ‘인간문화재’라는 단어를 처음 쓰면서 한국일보에 통영의 김봉룡 선생을 비롯한 문화 보유자를 소개했다.”면서 “김봉룡 선생을 필두로 통영의 많은 인물이 알려지면서 통영이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주목받았다.”고 밝혔다.

학술세미나는 오후 2시 통영예총 내에 있는 송천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첫 번째 시간에는 문화재청의 김인규 무형문화재 과장이 ‘국가무형문화재 제도와 인간문화재’라는 제목으로, 무형문화재 전반과 통영의 무형문화재들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어서 동의대 하훈 박사가 ‘근대 이후 통영지역 나전칠기 문화의 변용과 계승’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통영 출신의 하훈 박사는 “어려서 보았던 통영의 나전칠기의 뿌리를 찾아 일제 식민지 속에서 어떻게 계승돼 왔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통영 나전칠기의 인적 계승에 대한 연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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