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생각 안 나면 네가 있던 자리 흙 한 줌 붙여서 훅 뽑아 품에 넣어 급히 가던 사람들은 특징이 있지. 순식간에 터전을 잃은 것에 무슨 변명을 하는 건지, 합당한 이유를 대는 건지 혼잣말하다가 곧 정이 든다며 수줍게 웃는 특징.

너는 엽록체 빠지는 소리에 그만 주저앉고 싶을 것이고, 온 몸으로 쉬는 숨을 보면 나 역시 뱅글 도는 하늘이 단순한 현기증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아찔한 곡예를 하는 건 아마도 이것이 저승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만 날거야. 가슴까지 울려대는 네 숨소리를 듣고서야 숨소리 닮은 이름 하나 짓는다고 고민하는 모습은 시호(諡號)를 미리 짓는 것과 같아 보였어.

너의 절대자는 거칠고 먼 사막에서는 봄 짓는 시간을 보내느라 너쯤은 생각도 안하겠지만 한때 너로 하여 좋아서 희번덕대던 눈 속에 다녀간 바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때로 목을 꺾은 채 떨던 너를 가둔 것은 자꾸만 길어나는 서슬 하얀 세포 같은 뿌리들. 난해한 말을 주렁주렁 달고 숲에 던져질 때 쯤 한 몸이라고 소스라치게 놀랐었고. 그럴 때마다 무섭게 번져가는 속도에 너도 나도 생태계위해성 1급이니 2급이니 하는 판정을 내리기 바쁘지. 무슨 죄가 있다고.

저들은 빈 땅에 밀어 넣어 요구 받은 대로 연분홍 흥분제로 발육한 죄를 어떻게 물을 텐가. 그랬더라도 문명은 균형 있게 흐르지 못해 어느 곳에서는 빨갛게 살이 오른 어린 싹이 땅을 열 때까지 질긴 생명으로 도사리고 있을 것이고, 굳은 눈이 녹아 산물이 넘치는 날을 기다릴 거야. 정수리 간질거리는 싹이 트는 기적 한 장면. 저들이 넘실대며 모르던 이름을 피워 낼 테지.


*핑크뮬리 그라스: 넓게 분홍갈대밭처럼 보여 사진 촬영 명소로 인기를 끈다. 최근 생태계 교란 논란으로 떠올라 심은 것을 없앤다고 하는데 사람에게 유해성을 가진 식물은 아니라고 한다. 고백이라는 꽃말을 가진 분홍머릿결이라는 의역을 할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 조경에 많이 쓰이는 추세다.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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