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풍성함으로 치면 가을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온 들판에는 황금색이 구비치고 사과, 배, 감 등 없는 과일이 없을 정도이다. 벼 수확 날은 잔치집이다. 품앗이꾼들과 온 가족들이 들판에서 벼 베기에 매달린다. 땀방울이 온몸을 뒤덮어도 수확에 대한 즐거움은 곳곳에 피어났다. 벼 베는 날의 백미는 새참이다. 아침과 점심 중간쯤에 어머님이 빚은 막걸리와 안주를 준비하여 일꾼들에게 새참을 나른다. 나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뒤를 따르기도 하고, 벼 베는 논에서 심부름 하는 수준이지만 어른들의 수확에 대한 기대감이 전파되어 무언지 모르는 즐거움이 있다. 점심때면 즐거움은 더 컸다. 밥, 국, 김치, 온갖 반찬들로써 풍성한 밥상을 준비하고 벼를 베어낸 들판에 자리를 펴고 앉으면 소풍 기분이다. 여름날의 뜨거움으로 알곡을 더욱 여물게 만들어 풍년이 기약될 때에는 아버님의 모습은 기쁨 그 이상임을 기억하고 있다. 논바닥에 볏단을 말리고 나면 집 마당으로 이동하거나, 때론 그곳 들판에서 탈곡을 한다. 발로 밟으며 작동하는 탈곡기를 돌리면서 볏단의 나락을 털어 내는 것이다.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판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것이 화음이 되기도 하고, 건너편 이웃들과의 즐거운 담소가 연결되기도 하였다. 탈곡을 하고나면 집으로 나락을 이동하여 식량용과 학비용으로 두 개의 나락 둥지를 만들었다. 둥지에 나락을 가득 담는 추수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그해의 가을이 서산에 마지막 인사를 할 무렵이 된다. 아버님의 농사일 덕분에 잘 먹고 공부도 하고 지금 감사히 살고 있다.

텃밭에서 크고 있는 고구마 잎이 제법 무성하다. 땅 속에서 자라고 있을 고구마를 생각하면서 줄기 덤불을 정돈도 하고, 사이에 돋아 오르는 잡풀을 제거하기도 한다, 배추 모종을 심었다. 삼 개월 정도 자라면 올해의 배추김치를 담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이랑을 만들고 퇴비도 넣었다. 무 씨앗을 넣은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는데 푸른 무 잎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겨울에 맛볼 무김치 맛보다도 더 좋다. 고향의 들판은 황금들판이다. 머지않아 추수를 할 것이다. 요즘은 수확기와 탈곡기를 결합한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니, 예전 같은 풍경은 아니다. 고향 친구는 이번 달 말쯤에는 추수를 할 것이라고 한다. 햅쌀이 나면 자식들 집에도 보내어 수확의 기쁨을 같이 하고자 한다. 봄의 파종 그리고 여름날 땀 흘린 농부의 노력이 있었기에 추수를 기다릴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면 코끝에 찬바람이 싸~~하며 다가온다, 나는 추위도 이길 겸 가족들에게 아침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문을 박차고 달음박질을 하여 해변공원으로 달린다. 손자 둘, 아들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의 삼대(三代)가 아침 달리기, 공원의 체육기구로 운동하기 그리고 북신만 바닷가의 넉넉한 가을바람을 맞이한다. 아버님과 즐기던 수확에 대한 추억, 우리 텃밭에 자라고 있는 배추와 무의 모습들 그리고 오늘 해변 공원의 신선한 가을의 맛, 그 모두 추수이다. 가을이 주는 이 풍성함을 모두와 같이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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