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진 원장선생님(왼쪽)과 미슈메이 씨

4월 초 샘물요양보호사교육원에 가서 문의를 했다. 안수진 원장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미슈메이 씨가 말하는 한국말이 알아듣기 어려운데 어떤 사람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어요. 당신은 외국인인데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지금 인원이 꽉차서 다른 삼성학원에 신청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이 학원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서호시장에 있는 삼성학원에 수강해도 된다”라고 말하며 ‘이 학원이 집에서 가깝고 좋았는데...’라고 생각했다.

4월 말 샘물학원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한 학생이 갑자기 빠져서 빈 자리가 하나 있다”고. 나는 서둘러 교육센터에 가서 접수를 했다.

5월에 86기 반에 들었다. 첫 교실에서 내 자리는 맨 뒷줄이었다. 이 반에는 외국인이 나밖에 없었다. 공부할 내용은 많았고 선생님의 강의 진도가 빨랐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강의를 들었는데 듣기 힘겹고 어려웠다. 왜냐하면 모르는 단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틀을 보냈다. 셋째날 안수진 원장선생님은 수업할 때 내 자리를 맨 앞으로 옮겨주셨는데 수업을 주의 깊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같이 앉은 김은덕 씨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곳에서 나를 도와 줬다. 특히 원장선생님은 병원에서 수십 년 일한 경험을 가지고 강의에 활용하셨다. 그리고 선생님 어머니는 치매환자였는데, 실제 사례를 결합해 우리에게 생생한 강의를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교재 내용을 우리에게 낭랑하고 힘있게 읽어 주셨다. 또한 실습 수업을할 때 환자처럼 걸으셔서 우리들은 웃음소리 속에서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었다.

6월 말 이론 수업이 끝났고 7월에 나는 원어민강사 양성교육 기회를 잡아서 강습을 잘 받았다. 8월 29일은 요양보호사 시험이었다. 겨우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연습 문제만 풀려고 했는데 풀지 못했다. 그래서 교재를 보고 선생님처럼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서 한자를 썼다. 어떤 때는 한 페이지를 풀 때 30분 정도 걸리기도 하였다. 교재는 500여쪽인데 대부분 한번 읽고 교재를 읽으면서 문제를 풀었다. 이렇게 매일 몇 시간씩 앉아서 했더니 엉덩이와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대망의 8월 29일, 시험을 보러 갔다. 나는 두 나라의 문화를 이용해서 떡도 먹고 계란도 먹었다. 결국 시험에 합격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번 공부를 통해 얻은 것도 많았다. 노인의 심리 상태를 알게 되었고 나도 앞으로 늙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부단한 학습을 필요로 한다. 배움이 사람을 진보하게 한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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