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있는 단상/초대시선-물봉선화
꽃이 있는 단상/초대시선-물봉선화
  • 통영신문
  • 승인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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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낭이 톡 터져 날아오는 안부로
낮부터 추근대는 바람을 쫒다가
어쩌다 비애가 가득한 꽃자리에서
오수에 덜 깬 눈을 비비고 보았을 당신

누가 이곳을 정해 두고 갔을까
반나절 높은 볕이 쉬다가는 웅덩 그늘에
큰 누이 뺨 같은 꽃 보라가 일고 있는데
눈 먼 나비처럼 허튼 눈짓만 하는 당신은
누이를 보았구나, 울고 있는 누이를 보았구나

어머니가 낮은 바람 되어 알려준
열병 앓던 큰 누이 눈 감던 날에
소리 없이 울며 피던 꽃
한 번도 본 적 없던 그 누이를 만났구나

‘어머니는 아직도 밭을 매다
소갈증에 턱 막힌 가슴을 치던지요.
‘솔가지 같던 손가락에 굽은 놋쇠반지 여전하고
누이를 쳐다보면 물기 마른 눈에 눈물은 나던지요.‘

풀 언덕 뒤에 숨어 묻던 당신
그곳의 일들을 차마 알고 싶어
길을 가린 여린 가지에 고독한 투정을 걸어두고
화염 뚝뚝 떨어지는 꽃을 보다가

무릎 세워 돌아앉은 등이 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에게 돌아와서 말없이 건네주던 한 다발
삼가 늦은 추모에
다시 돌아눕는 당신


* 물봉선화: 껍질이 말라 터지면서 씨앗을 번식을 하는 물기가 많은 땅에서 군식하며 잘 자라는 야생화다. 나를 만지지마세요 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물봉선화는 특별한 이야기를 해 준 시어머니와의 사연이 있어서 더욱 슬픈 정감이 가는 꽃이다.

정소란(시인)

정소란 시인 (1970년 통영출생)
-2003년 월간 ‘조선문학’ 등단
-2019년 시집 (달을 품다) 출간
현재 시인의꽃집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