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타나토라자(Tana Toraja)는 인도네시아 중앙부에 있는 술라웨시(Sulawesi) 섬의 오지 중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곳이다. 술라웨시의 중심도시인 우중판당(Ujung Pandang)의 마카사르(Makassar)대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다음 날 아침에 타나토라자를 향하여 떠났다. 험한 비포장도로와 세찬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힘든 여정이었다. 타나토라자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해가 서산에 걸렸다. 지친 몸이지만 현실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들뜬 기분으로 하룻밤을 지냈다. 숙소 인근에 큰 천주교 성당이 있었다. 이슬람교가 대부분인 인도네시아에서 이곳은 특이하게 천주교 신자가 많다고 한다. 미로 같은 자연 동굴에 설치된 공동 무덤 방문이 이곳 여정의 첫 일정이었다. 깜깜한 동굴 속을 안내자의 희미한 랜턴 불빛을 따라서 걸었다. 곳곳에는 시신을 보관하는 관이 놓여 있고 때로는 위쪽에 해골이 놓여 있는 곳도 있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새로운 관도 보였다. 서서 걷기도 힘든 동굴 공동묘지 안을 오싹하고 스산한 기운을 느끼며 돌았다. 그리고 다음에 간 곳은 절벽 바위에 안치된 묘지들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에 구멍을 뚫어 그곳에 유골을 안치한 공동묘지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산 중턱에 별도의 큰 바위에 단독으로 가족 묘지를 만들어 바위 위에 표지석이나 사진을 세워둔 곳도 있었다. 저승에도 빈부 격차가 확실해 보였다. 이곳은 시신을 집안에 안치하고 길게는 3년까지도 생전과 같이 살아간다고 한다. 그동안 재산을 모아 많은 물소(Water buffalo)를 구입하여 장례를 준비한다고 한다. 농번기가 지난 7월이나 8월에 날짜를 잡아서 열흘 정도의 마을 공동의 장례 행사를 치르는데 이 행사가 이곳의 축제이다. 물소를 제물로 바치는 수에 따라 죽은 영혼이 좋은 곳에 간다고 한다. 수십 개의 물소 뿔을 달아 맨 집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의 동행 그리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는 삶에서 조상과의 교감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삶 자체가 조상과의 동행이었다.

오는 일요일에는 형님 부부와 성묘를 가기로 하였다. 벌초는 농협에 대행을 의뢰했으니, 산소에 잔술과 다과를 준비하여 성묘를 하면 된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낫을 가지고 하루 또는 이틀씩 묘소를 돌면서 산소의 풀을 벴다. 형제간의 소식도 묻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로 힘든 벌초일은 또 다른 추억 여행이 되기도 하였다. 산소에서 형제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풍경이 저승에 계시는 부모님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때론 그리움에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였다.

타나토라자에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가 동행하고 있다. 우리는 조상의 묘소를 찾아서 술과 다과를 올리고 큰절 하면서 온갖 소원을 빈다. 그리고 조상들은 우리에게 복운을 주고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추석이 다가 온다. 이맘때면 사랑을 온전히 내려 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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