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스토리로 세계무대에 도전하다
통영 스토리로 세계무대에 도전하다
  • 김선정 기자
  • 승인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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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벅수골 대표 장창석

“연극은 공동체 예술입니다. 혼자 잘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제가 받는 상은 우리 식구 전체가 수고해 받는 상입니다.”

송천박명용 예술인상을 받게 된 극단 벅수골 장창석 대표(68)는 수상 소감 한 마디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경남연극제에서는 대상을 비롯해 최우수상, 금상, 연출상을 여러 번 받았고, 전국연극제에서도 장려상, 은상, 공로상 등을 받았지만, 이 많은 수상 때마다 그는 ‘식구들의 상’을 대표해 받는 겸연쩍은 마음에 늘 부끄러워한다.

“고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것뿐입니다.”

다음 작품, 다음 할 일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세월이 흘러 버렸다고 장창석 대표는 회고한다. 돌아보니 36년간 310건에 달하는 작품을 공연했다.

장창석 대표가 처음 연극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큰형인 故장현 선생 덕이다.

20대말,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미래를 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마음에 사표를 내고 낙향했다. 그 무렵 어린 시절 큰바위얼굴과도 같이 정신적인 지주가 돼주었던 큰형 장현은 극단 벅수골을 창단, 통영에서 연극문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사람은 제대로 죽는 법을 알아야 한다. 먹을 것 때문에 머리를 숙이지 않고, 이름 때문에 굽히지 않고, 죽음 앞에서 꺾이지 않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큰형은 이런 충고와 함께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까지 극단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서른 살, 벅수골 창단 1년 뒤였다.

“건축과를 나왔기 때문에 무대미술과 조명은 별 어려움이 없었지요. 극단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극장은 더없이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지요.”

왼쪽부터 1983년 연극 ‘철부지들’, 1987년 연극 ‘정신병원에 간 햄릿’, 1988년 연극 ‘아니마와 여인’

장창석 대표는 ‘철부지들(1983년)’, ‘고도를 기다리며(1986년)’ 등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하며, 극단 식구들과 연극에 빠져들었다.

중앙시장 내에 소극장을 개관한 1986년, 서울과 부산의 극단을 초청해 연극축제를 기획하며 열심히 달리던 그때, 장영석·창석 형제의 정신적 지주였던 장현 대표가 마흔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필연이었는지, 운명이었는지 모르지요. 더 도망 다닐 수도 없고, 울고 싶어도 혼자 울어야 하는 시간이었어요.”

장창석 대표는 그때부터 벅수골 대표가 됐다. 충무연극협회 사무국장 6년, 예총 사무국장 등을 하며 연극을 만들다 보니 1993년 경남연극제에서 최우수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실험극, 부조리극, 번역극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면서 연극을 했습니다. 그러다가‘로드스토리를 찾아보자,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하는 반성이 일었고, 우리 지역 이야기를 찾게 됐습니다.”

처음 무대에 올린 통영 이야기는 해평 열녀를 극화한 ‘해평들녘’이다.

2011년 연극 ‘리타 길들이기’에서

“이 작품은 처음 장현 대표가 했던 것인데, 버리기가 아까워서 계속 다듬어 몇 번 다시 올리게 됐지요. 그러면서 새로운 로컬스토리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윤이상과 백석 이야기를 다룬 ‘통영! 나비의 꿈’, 가는개마을 처녀바위 설화를 담은 ‘치마꽃’, 故 전혁림 화백의 이야기를 담은 ‘코발트블루’, 청마시인과 이영도 시조시인 이야기를 담은 ‘꽃잎’, 통영 나전 장인을 주인공으로 세운 ‘나의 아름다운 백합’ 등이 장창석 대표가 연출한 대표적인 로컬스토리다. 벅수골이 무대에 올린 통영 이야기는 모두 21편이나 된다. 이 과정에서 강수성, 이국민, 장영석 등 통영지역 작가를 발굴한 것도 큰 보람이다.

장창석 대표의 인생은 벅수골의 역사와 함께한다. 오로지 벅수골의 대표와 연출자로 살아온 것이 그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2005년 장창석 대표는 ‘통영전국소극장축제’를 창설해 3회를 개최하고, 4년째인 2008년부터는 규모를 확대하여 ‘2008통영연극예술축제’를 시작했다. 통영연극예술축제는 척박한 지방 소도시에 연극문화의 꽃을 피워, 2015년부터 2018년, 2020년에 문화관광부 지정 대표적 공연예술제에 선정되었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벅수골은 ‘신나는 예술여행’ 문화우수단체로 선정돼 통영지역 섬마을 20곳을 순회공연했다. 또한 장 대표가 한산대첩축제의 기획위원, 추진위원, 집행위원, 군점·통제사행렬 분과위원장을 두루 거치면서, 벅수골을 중심으로 한산대첩축제의 군점과 통제사 행렬이 재현되기도 했다.

장창석 대표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예술감독이 되어 사량도 능양마을, 산양읍 세포(가는개)마을, 산양읍 금평(야소골)마을을 ‘색깔과 이야기가 있는 공동체문화마을’로 조성했다. 이 문화마을 조성사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우수사례에 선정됐다. 특히 가는개마을은 2014년도에 농림수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 창조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 벅수골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Primorsky Drama Theatre Of Youth 와 문화교류를 내용으로 하는 M.O.U를 맺었다. 2019년에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가서 7개 예술단체와 M.O.U를 체결, 교류공연을 통해 통영의 문화예술을 전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바람이 하나 있다면,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연극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소극장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말해도 벅수골, 소망을 말하라고 해도 오직 벅수골뿐인 장창석 대표는 그대로 벅수골과 한 몸이다. 비록 중앙시장 좁은 골목 안, 비가 새는 열악한 지하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벅수골은 통영을 넘어 세계로 뻗는 역사를 쓰고 있다.

이탈리아의 연극 단체들과 MOU를 체결했다.
이탈리아 배우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