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이탈리아에서 일주일간의 자유여행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명소를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컸다. 로마에서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져서 다시 오는 행운을 기원하였고, 베네치아에서 수상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색다른 즐거움도 컸다. 물속에 잠긴 도시가 여행 명소가 되기도 하고 곧 넘어질 것 같은 피사의 탑 앞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사진 찍기를 즐기고 있었다. 명소는 생각하기 나름이고 가꾸기 나름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나라의 경부 고속도로와 거의 비슷한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경부 고속도로가 이곳을 벤치마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조그마한 농촌 마을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그곳에서 밤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는 와인을 먹을 수 있는 조그마한 가게가 있었다. 우리 농촌의 선술집 정도로 대여섯 개의 식탁에 주인 할머님의 따듯한 안내와 다정다감한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 지역의 와인을 맛보는 것이 큰 재미였다. 이러한 풍경이 가는 곳마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역마다 색다른 그 맛을 즐겼다. 새로운 마을에 도착하면 와인 집을 찾았고, 그곳만의 색다른 와인 맛을 또 즐겼다.

어머니는 막걸리를 손수 담그셨다. 가을이 지나면 생밀을 방아 찧어 누룩을 만들었다. 그리고 발효를 마친 누룩을 절구에 찧어서 부드러운 분말로 만들고, 하얀 고두밥을 잘 식혀서 누룩 분말과 섞고 물과 함께 장독에 담고 발효를 시킨다. 술 익는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기도 하였다. 그 향기는 어떨 때는 거북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구수하게 느낄 때가 있었다. 적당히 발효가 되면 더 이상 발효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차가운 물이 있는 우물에 담그기도 하고, 윗부분의 청주를 떠서 술맛을 즐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련하다. 집집마다 술을 담그니 집집마다 술맛이 달랐다. 요즘은 가정집에 술을 담는 것보다는 지역마다 그 지역의 막걸리가 있다. 통영에도 세 종류의 지역 막걸리가 있고, 거제와 부산에도 지역 막걸리가 있다. 그리고 그 맛이 조금씩 다르다. 농장 일을 하러 갈 때에는 막걸리 두세 병을 가지고 가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또한 곳곳의 여행지에 가면 그 지역의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 그 지역의 막걸리 맛을 즐기는 것이 나의 새로운 여행 취향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오크통에서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맛있는 와인이 만들어지고 초저녁 동네 주점에서 삼삼오오 지인들이 모여서 와인 한잔을 즐긴다. 우리나라에는 지역마다 특성을 담은 그 지역의 막걸리가 있다. 와인보다도 더 복잡한 공정과 정성으로 빚어지는 것이 우리의 막걸리이다. 신선한 막걸리 한잔으로 고단함을 잊기도 하고 친구와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추억을 쌓기도 한다. 전국 방방곡곡의 여행지 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그 지역의 막걸리 한잔으로 지역의 맛을 느끼는 여정, 그리고 저녁이면 동네 주점에서 막걸리 맛을 즐기는 팔도 여행 꿈을 요즘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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