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맺어준 인연 한병노&김상도

한병노 씨(위)와 김상도 씨(아래)

“어어어~”

-풍덩!

방파제에 서 있던 전동휠체어가 눈 깜짝할 새에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휠체어에 타고 있던 김상도 씨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3~4m를 그대로 떨어져 바다 속에 잠겼다.

옆에서 낚시를 구경하던 한병노 씨가 전동휠체어가 떨어진 바다로 몸을 날렸다. 방파제에 붙어 있던 굴쩍에 손을 긁혔지만 사람이 바다에 빠졌다는 것밖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까스로 사람을 건져내 방파제 위로 올렸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김상도 씨는 물에 빠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119! 119에 전화 좀!”

방파제에 있던 사람들이 긴급전화를 하고, 물에 빠진 사람과 건지러 뛰어든 사람을 올리는 것을 도왔다. 전동휠체어의 무게 때문에 조금만 지체해도 깊이 가라앉았을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물속에 뛰어든 병노 씨가 없었다면 상도 씨가 지금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걸요. 갑자기 다급하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어들었지요.”

병노 씨의 말이다.

“구두를 신은 채 뛰어들었어요.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생명의 은인이지요.”

상도 씨의 말이다.

한병노 씨는 건설업을 한다. 모르긴 해도, 10년 넘게 무전동 자원봉사협의회 회장을 하고 있는 몸에 밴 봉사정신이 그날 순간적인 용기를 내게 한 것이리라.

그때까지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친구가 됐다. 구해놓고 보니 동갑내기였다. 병노 씨는 가끔 상도 씨의 주낙작업장을 찾아 말벗도 하고 술벗도 한다.

그날 상도 씨는 낚시를 하다가 변을 당했다. 방파제마다 조그만 안전턱이라도 하나씩 만들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도 세상일에는 다 좋은 면, 나쁜 면이 같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일을 계기로 좋은 친구를 알게 됐으니 그또한 좋은 일이지요.”

장애로 인해 불편한 게 많을 텐데도 김상도 씨 얼굴에는 구김살 하나 없다. 욕심없이 감사하며 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아주 못 걷게 된 건 10년이 채 안 됐어요. 부산에서 냉동회사 다닐 때 디스크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는데, 그 뒤로 걷는 게 몹시 불편하더라고요. 곧 낫겠지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오히려 점점 더 걷기 힘들어졌지요.”

상도 씨가 수술을 한 건 1999년이다. 그 무렵 상도 씨는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어려운 일을 한꺼번에 만났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직장도 계속 다닐 수 없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전세금도 날렸다. 가정은 이미 그 이전에 이혼으로 무너져 있었다. 정신은 우울증이 삼켜버렸다.

“그때 삶을 붙잡을 만한 동기가 있었더라면 더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고 건강을 찾기 위해 애썼을 텐데, 당시는 열심히 살 만한 동력이 없었어요. 그저 하루하루 숨만 쉬며 살았지요.”

5~6년이 지나서야 상도 씨는 자신의 병이 의료사고라는 것을 알게 됐다. 거제 마하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면서, 이전의 수술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점점 걷기 힘들어지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의료사고를 증명할 수도, 싸울 수도 없었다.

“남을 탓해봐야 무엇하겠습니까? 다 소용없는 일이지요. 이제는 낮추고 편하게 삽니다.”

점점 하반신이 굳어갈 때, 상도 씨는 오히려 몸을 낮추고 자족하며 사는 법을 배웠다.

그 무렵 상도 씨는 거제 누나 집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 손님을 통해 참 멋진 사람을 알게 됐다. 정말 사심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기도 하고 그의 사상에 전도되기도 했다.

한 통에 6500원. 상도 씨는 주낙 도구를 정리한다.

“그분을 보면서 하나씩 원망과 욕심을 버린 것 같습니다. 2010년경부터는 걷기가 힘들어지고, 그 한두 해 뒤부터는 아예 걸음을 뗄 수 없게 됐는데도 하루하루 감사하며 삽니다.”

상도 씨는 지금 동호동에서 7년째 살고 있다. 낚싯배에서 거둬온 주낙을 받아다 정리하는 일을 한다.

주낙 한 통을 작업하면 6500원을 벌 수 있다. 움직이기 불편한 것도 있고 꼼꼼하기도 해서, 상도 씨는 주낙 한 통 작업하는 데 1시간 반이 걸린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14시간 작업을 해도 하루에 9~10통 하기 힘들다. 최저임금의 반도 벌기 힘든 고된 생활이다.

그나마도 기온이 높아 장어가 많이 죽는 여름에는 일이 없다. 선상 작업만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리할 주낙이 육지까지 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감사하며 삽니다. 일이 없는 여름에는 오가다 들르는 친구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가을 겨울에는 일이 많아지니 감사하지요.”

우리는 누구나 예비 장애인이다. 어느 날 어떤 사고가 나에게 닥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 눈앞에 주어진 어떤 순간에 물속에 뛰어드는 용기를 발휘하거나 감사하며 하루를 사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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