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섬에 부딪히는 파도같은
하얀 속살을 벗겨내어 갈라지는 꽃이여
절명에 이른 당신의 아침을
모퉁이 돌아가는 언덕에서 보았습니다.

흰 빛 사윈 꽃잎이 암술과 수술을 발라내는
그것은 마치 바람도 비껴 스칠 삼차신경통을
사방을 물리고 고요히 앓고 있는 듯합니다.

어린 풀꽃도 엎드려 조상하는데
제가 가만히 있어도 될는지요
한참을 바라보고 두근거렸던
그동안 누렸던 흠모를 돌려주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낙화를 돕겠습니다

스치며 보았던 고고했던 백화여
눈부시게 희던 생의 한 켠은
기억하기 참 좋았습니다
녹음이 드리워지던 짙은 풀섶에
깊숙히 묻어 보낸 나의 송가는
다시 찾게 될 단서로 남았습니다


* 백합 : 향이 매우 좋고 순백의 아름다운 꽃. 야생 백합꽃의 모습은 마치 긴 장마를 지나면서 만난 한 줄기 햇살 같았다. 꽃이 질 때는 잎과 암술과 수술이 분리되는 듯하다

정소란(시인)

정 소 란
한산도에서 출생하여
월간 조선문학으로 등단,
현재 죽림에서 꽃집을 하며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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