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아침 8시가 되면 유치원생인 손자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다. 유치원 가는 길에 동행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자의 즐거운 등교 길을 만들어 준다. 정문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난 후에도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손자의 뒷모습을 살핀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손자는 뒤로 돌아서 손을 흔들고 나는 그에 답장의 손 흔들기를 한다. 한 달을 그렇게 정문 헤어짐을 하다가 등굣길 중간쯤에서 헤어지게 되었고, 요즘은 우리 아파트 관리실 앞에서 헤어지곤 한다. 차츰 홀로 등교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뒤에서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를 늘 하였다. 힐끔 힐끔 뒤돌아보면서 등교하는 손자는 나를 믿고 편안한 등교를 하고 있다. 손자와의 등굣길에 나누는 대화 내용에도 학교생활에 대한 즐거움을 강조하고 걱정이나 두려움에 대하여서는 할아버지를 믿으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마 손자는 나를 믿고 등교하고 유치원 생활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서 혼자서 집을 나설 것이고 홀로서기를 할 것이다.

셋째 아들의 자전거 타기를 가르쳤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에 태우고 서서히 밀어 주었다. 물론 아빠가 뒤에 있으니 걱정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고, 아들은 아빠를 믿고 자전거 페달을 밟게 되었다. 비틀비틀 가다가 넘어졌다. 안전장구도 없이 모래 바닥의 운동장에 넘어져 다쳤다. 무릎과 팔에 생채기가 나고 피가 삐죽 나왔다. 아들은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나에게 끝까지 잡아 주지 않는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다음날에는 꼭 잡아 준다는 다짐을 하고는 다시 운동장에 갔고, 이번에는 세게 밀어서 혼자서 제법 달리게 하였고, 넘어지면서도 다치지는 않았으나 아빠에 대한 야속함을 숨기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 아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자전거를 가르쳤다. 한 달이 지난 일요일에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그리고 5학년의 아들 셋을 데리고 시내 자전거 투어를 나섰다. 조금 걱정하는 셋째 아들에게는 아빠가 뒤에서 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창원 대로를 지나고 반송을 거쳐 대원동 집에까지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 아이가 제일 먼저 출발하고, 둘째와 셋째 아들 그리고 내가 제일 뒤에서 자전거를 탔다. 조금 달리다 보니 속도가 느려지고, 전용도로도 없는 찻길에서 차들과 섞이는 것도 위험하였다. 나는 제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아들들은 기진맥진 하면서도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아빠를 따라주었다. 1시간을 넘기는 부자(父子) 자전거 첫 투어링은 그렇게 마쳤다. 흠뻑 젖은 온 몸을 씻었다. 그 후로 아들 셋은 등하교를 자전거로 하게 되었고, 창원에서 마산까지도 자전거로 다녀오는 일도 있었다. 그 후로 아들들은 자전거 타기에 자신을 가지게 되어서 대학생일 때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스쿠터도 탔다.

아들들에게 야속한 아빠의 역할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믿고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때론 고통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이제는 사회에 나왔고 가정도 꾸렸다. 이제는 아부지를 걱정하는 자식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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