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큰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무더운 여름날에 친구 두 명과 함께 3박 4일간의 자전거 하이킹에 나섰다. 세 명의 고등학생들은 각자의 자전거에 코펠, 식량, 텐트 그리고 담요까지 챙겼다. 자전거를 세우기가 힘들 정도로 짐이 무거웠으나 창원을 출발하여 마산, 고성, 통영, 거제까지의 자전거 여행은 이들을 들뜨게 하고 있었다. 장마철이지만 출발하는 시간의 날씨는 맑음이었다. 고성에 있는 아들의 친구 집에서 즐거운 1박을 하였다는 소식을 받았다. 다음날 통영을 거쳐 거제 학동 해수욕장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학동 해수욕장에서 이틀간의 청춘의 휴가를 잘 보내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아들 일행은 녹초가 된 모습으로 집에 나타났다. 아들은 그간의 여정을 전하여 주었다. 고성에서 출발하여 통영에서 휴식 그리고 거제로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즐거움이었다. 거제에 진입하여 학동으로 가는 비탈진 오르막길을 오를 때에는 모두가 다리에 힘이 빠져 자전거를 밀 수 없었다.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 적재함 신세를 지고는 고개 마루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학동 해수욕장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본격적인 야영에 들어가는 순간 비가 오기 시작하였고 점점 세찬 폭우로 바뀌었다. 어둠이 찾아 왔을 때에는 강풍까지 동반된 폭우로 변하고는 그칠 줄 몰랐다. 해변에서 철수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었지만 텐트 안에서 불을 끄고 자는 척하면서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텐트를 두드리는 경찰들의 철수 명령으로 어쩔 도리 없이 인근 민가에 가서 1박을 하게 되었고 만들어간 용돈을 다 쓰게 되었다. 다음날 시외버스 기사에게 사정하여 간신히 자전거를 싣고 창원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 들어서면서 ‘우리집이 제일 좋다’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사정은 이때부터 생겼다. 중학교 1학년인 셋째 아들이 발끈하였다. 왜 큰 형님만 해수욕장에 놀러 다녀오느냐는 것이었다. 큰 형님이 2박을 보내고 왔으니, 우리도 해수욕장에 가서 2박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긴급하게 가족회의를 하고는 아들 셋과 우리 부부는 그 시간에 다시 해수욕장으로 가게 되었다.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백사장에 텐트를 치고 버너에 불을 붙여 코펠에 밥을 해서 여름날의 휴가를 즐기기 시작하였다. 해질 무렵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폭우가 되었다. 텐트 바닥은 이미 물바다가 되었다. 어두운 밤에 텐트 주위로 물길을 만들고 옷을 두툼히 입었다. 온 가족이 서로 껴안고 추위를 이기면서 밤을 지냈다. 다음날 나는 자동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였다. 다음날도 해수욕장에서 1박을 하였다. 결국 2박3일간의 해수욕장에서의 가족 휴가를 마무리하고는 창원 집으로 돌아왔다. 큰 아들의 결혼식에 그때의 친구가 사회를 보는 평생친구가 되었고, 빗물이 스며드는 좁은 텐트 속에서 온 가족이 서로 껴안고 잠을 청한 그날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몸도 마음도 지친 가족 그리고 이웃이 있다. 가벼운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건강한 여름휴가를 같이 하고 싶다. 평생 동행친구도 만들고 가족 사랑도 확인하는 마음이 넉넉한 올해의 휴가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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