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아트의 창시자 탁영경 작가

“작가는 자기 작품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팔순을 넘긴 노화가가 ‘진짜 작품’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통영이 자랑하는 한국 디지털아트의 창시자 탁영경(83) 작가다.

“젊었을 때는 그림에 많은 것을 담고 싶어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가 많으니 그림이 복잡해지고 사실적이 됐지요. 그러나 갈수록 색을 줄이고 형태를 줄이게 됩니다. 이렇게 줄어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작품의 연조가 깊어질수록 산과 섬은 더 단순해지고, 색은 오방색으로 선명해진다.

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탁영경 작가는 최근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전시공간 사치아트갤러리에 작품 6점을 출품했다. 온라인갤러리라 수만 명의 작가가 등록해 활동할 수 있지만, 사치갤러리가 운영하는 곳이라 아무나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치아트갤러리에 출품된 탁영경 작가의 작품

2006년 문을 연 사치아트갤러리는 온라인 미술품 거래시장의 성장과 함께 세계적인 온라인 갤러리로 성장했다. 현대적 감각의 신진작가와 작품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미술계에서는 이 사이트를 통해 현대미술시장의 흐름을 읽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전세계 모든 전시회가 멈춘 이때, 온라인갤러리는 새로운 전시문화의 대안과 도전으로 떠올랐다. 60여 년 미술인생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탁영경 작가는 급변하는 전시문화의 새 물결에 가장 발빠르게 도전했다.

“한국 작가로는 제가 다섯 번째로 그림을 올리게 됐습니다. 작품 6점을 골라 보냈는데, 모두 별 다섯 개의 평가를 받았고, 그 중 하나가 인기작이 됐습니다.”

탁영경 작가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국제전에 출품하기 위해 15점의 작품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전시회가 취소되자, 그 중 일부 작품을 사치아트갤러리에 출품하게 됐다. 작가 경력은 일체 묻지 않고 작품과 사이즈, 작품 설명만 보내 깐깐하게 작품을 고르는 세계적인 사이트에 등록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디지털아트를 처음 시작한 탁영경 작가다운 걸음이다. 포스트코로나시대, 미술시장의 흐름이 변화하는 길을 찾아 누구보다 빠르게 개척하는 선봉에 섰으니 말이다.

탁영경 작가는 PC가 보급되기도 전인 1992년, 매킨토시를 통해 디지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컴퓨터가 걸음마를 시작하던 1997년부터 디지털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봄이 오는 섬

“작가의 독특한 기법은 도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킨토시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나서 저는 이제 붓으로 그리는 시대가 지나가겠다 하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탁영경 작가는 붓대신 펜 마우스를 작품의 도구로 선택했다. 시대가 발전하는데, 호미로 농사지을 수 없다는 자각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디지털화의 가장 큰 매력은 색깔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같은 그림에서 색만 바꾸어 봄여름가을겨울을 표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필사를 하던 문학작품을 인쇄로 찍어낼 수 있게 된 출판의 변화처럼, 그림의 디지털화는 사이즈와 색을 무한대로 조절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 혁명이었다. 그 무한의 자유로움에 매료돼, 탁영경 작가는 디지털화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림은 소장가치보다 감상가치로 가야 합니다.”

소장가치가 높을수록 오히려 진품을 감상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현실, 그러나 디지털화는 그 자체가 모두 진품이니 더 가까이 감상할 수 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프린트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다. 2차원의 프린트는 무슨 도구를 사용하든지 평면에 표현될 수밖에 없어, 손으로 그린 미술품보다 평가절하돼 왔다.

그러나 탁영경 작가는 3D프린터로 섬세한 붓질과 같은 입체감을 살려내 그 한계를 허물어 버렸다. 그러자 남는 것은 서두에 인용한 작가의 말처럼 철학이다. 붓으로 그리든 펜 마우스로 그리든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철학만이 오롯이 남아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탁영경 작가는 스물일곱 살 때 통영을 떠났다. 처음 시작한 한산대첩축제에서 3년 동안 미술분과 일을 맡아 본 다음이었다.

“저는 고향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년에 두세 번씩 내려오는데 고향을 떠났다고 할 수 있나요?”

거주지가 서울, 수원인 지는 50여 년이 지났지만 탁영경 작가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임진왜란 때 통영에 내려온 탁연 장군의 직계직손이어서일까, 그의 고향 사랑의 뿌리는 범접할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다.

“고향을 그릴 때는 엄숙해지지요. 고향은 눈을 감아도, 꿈에도 보입니다. 내 고향 통영에 ‘디지털아트센터’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통영에 이런 곳도 있구나 하는 곳이 되도록, 영상으로 디지털 작품을 방영하고, 차와 같은 음식도 먹고, 애들 놀이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미디어로 촬영하면 붓으로 그린 화가의 작품도 디지털화가 될 수 있다. 누구보다 앞서 디지털아트의 길을 개척해온 노화가는 예술이 소장가치를 넘어 감상가치를 갖고, 좋은 작품을 늘 옆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섬과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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