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겹도록

그이 눈동자가 허공을 흔드는 동안
시간은 꺼져버렸다
장맛비 속으로 전해들은
그이가 기어이 하얗게 멀어져 갔다는
마지막 소식

방년(芳年)의 꽃대 끝
슬픈 속살은 붉게도 미어져 나온다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말라가는 혀를 가진 그녀
등을 돌리고 몸 밖에서 피는 꽃잎처럼
아, 차마 보지 못하는 절명이여
깊숙한 연보라 꽃부리에서 눈을 감았다

물로 씻어 울음을 담아
다시 울며 보낸 시간을 담아
빗물이 차고 넘치는 동그만 옹기에
긴 호곡성(號哭聲)에 섞여 나오는 슬픔을 봉인하고
구음(口吟)으로 문질러 보낸다 그녀

푸른 꽃대궁째 나도 담아 보낼까

긴 겨울 지나고
연분홍 속살 열어 아린 고별하고
가슴에 품다가 검고 수척한 손에 쥐어준 그이 연서
매오로시 꽃
슬픈 대궁이 물들어 간다, 잦아드는 호흡

정소란(시인)

정 소 란
한산도에서 출생하여
월간 조선문학으로 등단,
현재 죽림에서 꽃집을 하며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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