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방학 숙제로는 곤충채집, 식물채집, 일기쓰기, 편지쓰기 등이 있었다. 교과목 숙제 보다는 야외활동으로 할 수 있는 숙제가 많았다. 산천을 돌아다니면서 숙제를 한 셈이다. 각종 식물을 채집하고 그 이름을 찾고, 식물을 곱게 말려서 종이에 붙이는 일련의 작업 정성은 대단하였다. 곤충 채집은 어려운 작업 과정이 더 많았다. 잡는 것도 힘들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것이 힘들었다. 입체적으로 유리를 얹은 표본 함을 만들기도 하였다. 방학 숙제를 평가하고 상도 주고 전시도 하였다. 자연을 벗하여 이루어지는 그러한 숙제가 재미도 있어서 방학의 기대 속에 포함되었다.

우리집의 동쪽으로는 멀리 아침재가 있다. 아침에 해 뜨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사오백은 되어 보이는 곳이다. 그 재를 넘어서 한나절을 걸어가면 이모 집이 나타나고 그곳이 나의 방학 때의 단골 방문지였다. 이모는 어머니의 동생이다. 전화도 없는 시대였으니,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방학만 되면 가는 곳이고 일주일쯤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누나의 손을 잡고 산 능선을 넘어갔고, 그 후로는 나 혼자 가기도 하였다. 그곳에 가면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았다. 이모는 귀하게 보관 중인 홍시며, 과자를 당신의 자녀들 몰래 주었고, 방안에서 나 혼자서 먹고 나오게 하였다. 그곳에는 이종 사촌 누나도 있고 동생도 있었다. 나를 모두 좋아하였다. 바닷가에서 하루 내내 조개파기, 파래 따기, 쏙 잡기 등을 하면서 놀기도 하였다. 논두렁 개울에서 게를 잡거나 물장난을 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우리집에서는 막내이지만 그곳에서는 나이로 중간쯤 된다. 이모 집에 가면 나를 늘 좋은 자리에 앉혀 주었고, 식단의 음식과 반찬도 나에게는 특별하였다. 손꼽아 보니 벌써 50년도 훌쩍 넘은 시간 여행이다. 특히 초등학교 때의 여름방학은 일가 친척집 방문의 즐거움, 산과 들 그리고 바닷가 갯벌에서의 즐거움도 널려 있었다. 아들 셋은 방학이면 나의 고향 부모님 댁에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도시의 아파트 생활보다도 농촌 생활을 더 즐거워하였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을 밭 언저리에 앉혀 놀게 하고 일을 하였던 이야기는 간직하고 싶은 한 장의 그림이다. 나의 아들 셋은 가을 농사를 마무리한 볏단 앞에서 폼 잡고 찍은 사진을 요즘도 카카오톡 바탕에 보관하고 그 때의 추억을 즐기고 있다. 늘 방학을 기다리던 아들들이 이제는 장가가서 방학을 기다리는 그들의 자식들이 있으니, 세월은 그렇게 많이 흘렀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인 손자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하여 이제야 방학이 다가온다. 그동안 집안에서의 생활이 길었다. 비대면 수업으로 컴퓨터 앞에서 길게는 6교시까지 수업을 하여야 하고, 숙제도 컴퓨터에 혼자서 업로드 시켜야 하는 등의 힘든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번 방학은 그간의 학업을 잠시 내려놓고 이모집과 고모집도 방문하고, 해수욕장에 풍덩 몸을 담그기도 하며, 자연 속에 푹 빠져서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러한 건강한 시간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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