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와 같이 동네 뒷산 뱀밭골에서 풀을 지게에 가득 지고 집에 도착하면 아침 햇살이 마당에 들어오곤 하였다. 풀을 소에게 주면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에 흐뭇함이 컸다. 마치 자식이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소에게 먼저 풀을 먹이고 우리가 밥상에 앉는 것이 순서이기도 하였다. 흥건한 얼굴의 땀을 시원한 냇물로 씻고 나서 먹는 아침 밥맛은 참으로 꿀맛이었다. 우리집의 소, 돼지, 염소, 고양이, 토끼, 닭 등도 우리의 가족이었다. 특히 나에게는 가축들과의 친교가 하루의 놀이가 되고, 그들을 돌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나의 손길에 의하여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주인으로 농촌 생활의 재미가 쏠쏠하였다. 소가 팔려가거나, 나에게는 명절 진설용으로 돼지나 염소를 잡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고, 이러한 일이 있는 날에는 울음과 눈물로써 대처하지만 역부족으로 속상하여 밥을 굶기도 하였다.

추석이 다가오면 선산의 풀을 베는 것이 큰 행사이다. 사촌 형제들이 모여서 선산에 풀 베고 점심 먹고 지내는 시간이 형제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즐거움도 있고, 각종 소식을 나누는 일로도 의미가 컸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운 추억담도 나누고 때론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하였다. 부모님과의 에피소드를 나누는 묘소에서의 하루해는 금방 지나간다. 예초기가 등장하면서 풀 베는 일이 쉬워졌다. 예초기를 구입하여 산소를 돌면서 예초를 하기도 하였다. 몇 년을 그렇게 지냈으나, 나의 나이가 60이 훌쩍 넘었으니, 이 또한 힘든 일이 되었다. 산림조합에서 묘소 예초를 대행하여 준다는 소식을 접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산림조합에 비용을 보내고 예초가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받으면, 우리는 산소를 찾아 묘소를 돌면서 과일과 음료를 준비하여 성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산소의 풀 베는 일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농촌 들녘에 조그마한 농장을 가지게 되었다. 계절에 따른 나무 전정과 풀 베는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 요즘 같은 여름철이 되면 농장 집 마당이나 과수원의 풀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매주 예초를 하여야 한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흘러서 눈이 따갑고 등에는 땀이 물줄기처럼 흐르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금방 풀밭 천지가 되어 보기가 흉해진다. 예초기를 지고 과수원에서 하루 내내 풀베기에 매달리는 농부가 된다. 이제는 풀을 베어서 가축에게 먹일 일이 없어졌다. 사료를 구입하여서 가축을 키우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에게 풀 베는 일은 계속되고, 그러한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힐링으로 또는 가족들이 모여서 같이 땀 흘리는 시간의 즐거움을 갖는다. 풀을 베면서 코끝에 스치는 초목 향은 풀 베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기도 하다.

예초기를 손보며, 어린 시절의 풀베기, 선산에서의 예초 그리고 오늘날 농장에서의 풀베기가 나의 인생에서 또 다른 역사의 장면이 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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