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여름
  • 통영신문
  • 승인 2020.0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농장에서 매실을 따면서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쳐냈다. 6월 초부터 매실 수확을 하는데, 올해는 매실 수확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겨울에 전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것 같다. 나무들의 풍성한 가지와 잎은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하여 그늘로서의 역할은 좋지만 매실의 굵기가 작고, 충실치 못한 과실로서 수확의 기쁨 보다는 나의 게으름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매실 향 그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하얀 구름을 보는 것으로 행복감이 가득하였다. 매실 엑기스와 매실주를 담그면서 올해의 수확을 마무리 하였다. 매실 수확이 끝나고 나면 우리 농장은 여름으로 들어선다. 풀밭에는 온갖 생물들이 잠에서 깨어나듯 농부의 얼굴이며 살갗을 괴롭힌다. 특히 조그마한 개미들이며, 진드기들도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침범한 외계인을 대하듯 괴롭힘으로 존재를 알린다. 벌들은 울창한 아카시아 꽃에 진(陣)을 치고는 꿀을 수확한다. 개울가 풀숲의 나비들은 그들만의 사랑의 세레나데를 하곤 한다. 개울물은 제법 종알거리면서 흐르기 시작한다. 고추나무에 연초록 고추가 몇 개 씩 열렸다. 지주목을 세우고 줄기를 묶어서 자람을 응원한다. 상추는 조금씩 자라나는 겉잎만 떼어내어도 우리 가족은 먹고 남을 정도이다. 부추는 몇 포기에 불과한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애도 베어 먹고 나면 또 벨 수 있을 만큼 자라 준다. 오이도 쑥쑥 자라서 아기 오이를 내밀어 준다. 지주목에 줄기를 모아서 묶었다. 옥수수는 지주목 없이도 잘 자라고 있다. 우리 밭의 식물들은 기술이 부족하고 게으른 농부를 주인으로 만났지만 우리에게 주는 각종 풍성한 채소류는 식탁을 늘 행복하게 하여 준다. 지난봄에 친구가 준 씨감자가 우리 밭에서 무성하게 자라서 풍년을 안겨주었다. 여름 초입에 밭농사와 과수원 일들이 나를 바쁘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좋다.

지난해 가을에 찬바람을 막기 위하여 붙였던 문풍지를 떼어내었다. 농촌의 추위는 이제야 끝이 났다. 밤 시간에는 추위의 꼬리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고 있다. 거실 창을 여니 앞에는 감나무 잎이 손짓하고, 부엌 창을 여니 앵두나무와 보리수가 청춘의 찬란함으로 푸른 자태를 보여준다. 태양의 열기는 나뭇잎을 만나 시원한 바람으로 변신한다. 저 멀리서 간간히 들려오는 뻐꾹새 소리는 뜨거운 여름날이 왔음을 확인하여 준다. 찬물 등목을 하고나면 더위는 저만치 도망가 버린다. 창밖의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와 나와 만나고 나는 그 바람결에 낮잠을 청하게 된다. 땀 흘리고, 등목하고, 수박 먹고, 낮잠을 즐기는 이 시간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밖에는 이미 여름이 성큼 왔다.

봄에 뿌린 씨앗들은 넉넉한 채소의 모습이다. 수박과 참외 씨를 받아서 밭에 심자고 조르는 손자들의 소원을 들어 그들만의 밭을 만들고 씨앗을 넣었다. 그들은 지금 옥수수 추수 날을 손꼽고 있다. 열정이 가득한 여름날에 같이 풍덩 빠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