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시집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통영에 시집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김선정 기자
  • 승인 2020.0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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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체육회 홍보대사 장지원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지원 전 태권도 선수가 통영시 체육회 홍보대사가 됐다.

장지원 홍보대사는 2012년 6월 통영으로 시집온 서울댁이다. 통영에서의 8년은 7살, 5살 두 아들을 잉태하고 키우는 엄마로서의 시간이었다.

장지원 제공

장지원 씨는 태권도 선수로서는 조금 늦은 나이인 스물다섯 살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태권도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올림픽 선발전을 통과하는 것이 더 어려운 종목이다. 올림픽 메달을 대한민국이 독식할 것을 우려, 올림픽 4체급 중에서 두 명만 출전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아테네 올림픽보다 앞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장지원 선수는 타의에 의해 출전권을 내줘야 했다. 코칭스태프가 기권을 뜻하는 흰수건을 던져버린 것.

경기 종료를 겨우 10초 남겨둔 시점, 과도한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권패를 당한 시련은 스물한 살의 선수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것이었다.

“슬럼프에 빠졌죠. 스포츠가 이런 건가 싶으니까 그만두고 싶고 혼란스러웠죠. 4년 뒤에 다시 기회가 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당시 장지원 씨는 한국체대 3학년이었다. 상대선수 역시 같은 학교 같은 과 친구였다. 똑같은 제자 둘 중에 하나를 내보내야 하는 교수님이 고심 끝에 정재은 선수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가 저보다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고, 국제대회 경험도 많으니까 그런 결정을 하신 것 같아요.”

경력으로 말하자면 장지원 선수는 아주 불리할 수밖에 없다. 중학교 3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태’ 자도 몰랐어요. 도장에 다녀본 적도 없죠.”

중3 때 달리기를 잘해서 육상대회에 나갔는데, 고등학교 태권도부 선생님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장지원 선수의 신체적 조건과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그 선생님은 장지원 선수의 부모님을 만나 태권도 선수로 키워보겠다고 설득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엄마가 몹시 반대하셨는데, 다행히 아빠가 밀어주셨죠. 그때부터 학교 마치고 고등학교에 가서 언니들이랑 같이 운동을 했어요.”

장지원 제공

중3에 운동을 시작해서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한 선수들 사이에서 웬만큼 잘하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장지원 선수는 놀랄 만한 기량을 발휘해 국내 최고의 스포츠대학인 한국체대에 합격했다. 그리고 3학년 때는 올림픽 선발전 최종 결승전까지 나갔고, 사실상 승리할 뻔했다. 점수가 더 높지 않았다면, 기권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정재은 선수가 시드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동안, 장지원 선수는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그래도 다음 대회가 있고, 또 다음 대회가 있고 하니까 극복하며 나갔어요. 실업팀에 가서 눈앞의 경기에 힘을 다하다 보니 올림픽 기회가 다시 왔어요.”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자, 매스컴에서는 “태권숙녀 장지원이 잃어버린 4년을 보상받았다”고 썼다.

장지원 선수는 2005년 삼성에스원 태권도단 코치가 되었고, 2010년에는 수원여자대학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가 됐다. 그리고 2011년에는 제49회 대한민국 체육상 맹호장을 받았다.

장지원 씨는 서른세 살이던 2011년에 처음 통영에 왔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그저 놀러온 길, 그것도 원래 거제로 가려다가 목적지를 바꾼 길이었다.

“처음 간 곳이 ES리조트였는데,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어요. 아, 통영이 이런 곳이구나 싶고 정말 좋았죠.”

장지원 씨의 가족들

장지원 씨는 현재 통영시체육회 안휘준 회장을 알고 있었다. 안 회장이 가까이 지내던 후배 이충섭 원장(이사랑 치과 원장. 현 통영시체육회 부회장)에게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놀러오니 통영을 안내해 줘라.”했던 것이 두 사람을 잇는 큐피트가 됐다.

“자꾸 사진을 찍더라고요. 나중에 말하기를, 원래 이상형이 키크고 운동 잘하는 여성이었대요.”

그렇다면 키 175cm에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장지원 씨는 200% 충족된 이상형이다. 고성군 보건소에 근무할 때는 도민체전 일반부에 권투 선수로 출전하기도 할 만큼 스포츠에 관심이 컸던 이충섭 원장은 성격도 좋고 관심사도 잘 맞는 장지원 씨에게 처음부터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후 연락을 주고받던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텄고, 8개월의 교제 끝에 결혼을 하게 됐다.

처음 통영에 왔을 때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외롭기도 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자라고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또래엄마들과 사귀게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훈련 다니며 집을 나와 살았으니까 적응이 빠른 것 같아요. 서울, 그것도 나고 자란 은평구가 아니면 어디나 낯선 것은 똑같은데, 통영은 이렇게 아름답잖아요?”

회도 좋아하고 통영 음식도 잘 맞고 이동거리가 짧아 삶이 여유로워진 것도 좋다. 서울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던 한두 시간 출근길과 복잡한 삶을 떠나 포근히 안아주는 바다도 좋다.

“매일 보면 지루할 줄 알았는데, 바다는 봐도봐도 좋아요. 남편은 통영이 고향인데도 바다가 좋대요.”

체육회 홍보대사를 맡으면서 장지원 씨는 통영에의 ‘기여’를 생각한다. 원래 꿈이었던 장학회나 스포츠 꿈나무들에게 대한 지원도 꿈꾼다. 통영으로 시집온 통영사람으로서, 통영을 고향삼아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