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정한식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하여 우리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 6.25전쟁과 6.25동란 등으로 불리던 것이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약 450만 명에 달하고, 남한 43%의 산업 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까지 휴전 상태로 지내고 있다. 이제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았다. 나의 초등학교 때 배운 ‘우리의 소원’ 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국민이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면 실향민뿐만 아니라 남한이나 북한의 사람들도 눈물을 훔치곤 한다. 그러나 70년 동안이나 통일을 원하였지만 통일한국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때가 1954년 봄이니 휴전 다음해에 태어나서 평생을 휴전상태인 나라에서 살아 왔다. 이제 이것이 평화인지 휴전인지 감각도 미약하다.

산천은 벌거숭이였다. 땔감을 구하고 가축에게 먹일 풀을 매일 산에서 구하여 오니, 산천은 견디기 힘든 정도였다. 갈비라고 하여 소나무 잎이 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갈퀴로 긁어 담아 와서 땔감으로 하였다. 오일장에서 그 땔감을 사고팔기도 하였다. 매년 오뉴월이 되면 춘궁기(春窮期)라고 하여 집안의 식량이 동이 난다. 추수를 하여야 하는 가을을 맞이할 때까지 식량이 없었다. 고구마, 호박, 감자, 심지어 소나무의 속살을 뜯어내어서 먹기도 하였다. 들판의 쑥을 캐어서 밀가루와 섞어 찐 것은 고급 음식에 해당된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의 머릿니를 잡는 풍경이 허다하고, 아이들의 내의에 생긴 이를 잡기 위하여 약제를 살포하기도 하였다. 산림녹화사업을 한다고 하여 학생들이 산에서 줄을 지어서 아카시아 나무를 많이 심었다. 요즘의 산천에 퍼져 있는 아카시아 나무의 원천이 그때의 나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초등학생들에게 1인당 쥐꼬리를 몇 개씩 가져 오라는 숙제 때문에 전날 밤에 온 가족이 쥐잡기에 나서기도 하였다. 학교 점심시간에는 상당수 학생들이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 죽으로 배고픔을 참았다. 원조로 받은 그 강냉이 죽은 금방 배가 부르지만 한 두 시간 지나면 배가 고파진다. 이러한 풍경이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다.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위의 내용보다 훨씬 클 것이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닥친 일만 하여도 감당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분단의 나라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이 흘린 눈물과 땀이 생각난다. 이기주의가 넘치는 국제 사회에서 분단국가로써 지금까지 버텨 준 것도 용하다.

6.25전쟁 70주년이 되었다. 피로 물들었던 한반도, 그 후 수많은 역사가 기록되었다. 때론 화해하고 때론 적대적인 남북관계이다. 우리의 소원을 매듭지어 위대한 통일한국의 시대가 활짝 펼쳐지는 것을 보고 나는 이승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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