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만난 사람-동원고등학교 황차열 교장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최근 학교 공간을 바꾸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주고자 하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영의 동원고등학교는 공간을 바꾸어 역사를 변화시킨 좋은 예로 꼽힌다. 2012년 학교를 옮기면서 통영을 넘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학교로 탈바꿈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물리적인 건물을 바꾸어서 학교가 달라진 건 아니다. 공간에 대한 철학, 학생에 대한 애정이 새로운 교사에 투영돼 있기 때문에 도약할 수 있었던 것.

동원고의 변신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교직 인생 전부를 이 학교에서 보낸 황차열 교장(60)이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28살 때 처음 교직을 시작한 곳이 바로 이 학교입니다. 당시에는 통영상업고등학교였지요. 상고가 제일고가 되고 동원고로 바뀌는 동안 저는 일반사회를 가르치는 평교사로 시작해 진학부장, 연구부장, 교무부장, 교감을 거쳐 2012년에 교장이 되었습니다.”

올해로 교장 9년 차, 교직 정년퇴임을 4년이나 남겨두고 있는데,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교장 임기 8년을 다 채웠다. 너무 일찍 교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 제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장복만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300억원을 투자해 새로운 교사를 지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도, 교사도, 지역사회의 인식도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거액의 투자가 망설여졌던 것일까? 10년 세월이 흘러가도록 학교 신축 계획은 표류하고 있었다.

2년 연속 서울대 입학생을 내면서 학교의 인식을 끌어올리는 성의를 보인 끝에 2010년, 드디어 새 학교의 설계도가 만들어졌다. 운동장을 가운데 두고 1자형의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마주보고 있는 전통적인 학교 그림이었다.

당시 교무부장이었던 황차열 교장은 일제시대 교사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설계도를 보고 마음이 상했다. 이런 불평이 전해졌는지, 장복만 이사장은 교사들의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교무부장 이상의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주)동원개발 본사가 있는 부산으로 불렀다.

“가보니 전기, 배관, 설계 등의 전문가들이 다 모여 있는 겁니다. 거기서 이사장님이 ‘오늘 설계 마치고 가라.’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좀 기가 죽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종이 치면 1분 안에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동수업시 동선이 꼬이지 않도록 교차공간이 넓어야 한다. 여학생 화장실은 세면대를 더 확보해야 한다….

“여학생에게 화장실은 들어가서 울기도 하고 화장도 고치고 친구를 기다리기도 하는 ‘공간’입니다. 학생 숫자에만 맞출 일은 아니지요.”

딸만 둘 키우는 아버지이기 때문일까? 황차열 교장은 아이들의 작은 마음 하나까지도 헤아리며 ‘학생들이 행복한 공간’을 제안했다. 동아리실 하나, 특수목적 교실 하나 하나에 아이들의 꿈을 담았다.

이후 황차열 선생은 교감이 됐다. 장복만 이사장이 학교 설계의 실제 권한을 준 것이다.

30차례에 걸친 설계 변경으로 동원고등학교는 오늘의 모습이 됐다.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교사다. 예산은 1.5배가 더 들어, 총 공사비만 485억 원이 들었고, 내부 집기는 모두 교육과정 공모 등을 통해 국가 지원을 받으며 채워 넣었다.

학교가 완공되어가던 2012년에 황차열 선생은 교장이 됐다. 쉰한살, 너무 이른 발령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이것저것 부족한 점을 헤아리자, 장복만 이사장은 “고등학교 나와 대통령 하는 분들도 있는데 뭐가 문제고?” 했다.

교장이 된 뒤, 황차열 선생은 학교 이름, 교훈, 시스템을 모두 바꿨다. 학생들에게 꿈을 주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뚫어가며 했다.

일본 아리마 고등학교 학생들을 환영하며

이런 노력으로 동원고등학교는 2013년에 제17회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에 지정됐고, 2014년엔 유네스코 ESD-RICE 프로젝트 학교에 선정됐다. 2016년에는 국제로타리클럽 장기 외국 청소년 교환학생 호스트 학교로 선정돼 학생들에게 세계를 향한 눈을 틔워주었다. 미국 아이비리그 비전트립, 국제교환학생, 일본 아리마고등학교와의 자매결연 등도 모두 학생들을 글로벌인재로 키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2018년에는 학교를 넘어 통영지역 우수한 학생들에게 문을 열어놓은 ‘통영시 인재육성프로그램 거점학교’가 됐다. 이와 함께 과학중점학교로 선정돼 매년 1억원의 운영비를 받아 실험 탐구 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다.

황차열 교장은 올해 8월, 이른 은퇴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아쉬움보다 감사로 마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인생의 절반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내가 꿈꿨던 것 이상으로 좋은 학교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고, 이렇게 많은 교사들, 학생들 사랑할 수 있었던 것도 고맙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공간의 변화였지만, 그 실체는 학생들을 향한 사랑의 현현(顯現)이었다.

스승의 날에 교장선생님에게 사랑을 표현한 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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